[세상읽기] 휴가 때는 ‘불안’의 스위치를 끄세요

김민경 당근정신의학과의원장 2024. 8. 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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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당근정신의학과의원장

휴가철이다. 과연 휴가나 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몸과 마음에 쉼을 준다면 공간은 또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고통 감내 기술’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좌절을 극복하고 버티는 자체가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통을 감내하려면 끝난다는 희망이나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일이 많고 힘들더라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조금 여유가 생기겠지 라는 기대와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가도 퇴근 시간이 되면 끝나고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안도감들이, 현재를 버티게 한다.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해지면 이런 예측이 부정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영원히 나아질 것 같지 않으며 또 다른 어려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럴 때는 공간을 벗어나서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간은 우리 마음에 즉각적이고 강한 파급이 있다. 많은 이들이 헬스장에서의 운동이, 도서관에서의 공부가 더 잘된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에서 바라보고 듣고 느껴지는 향기들이 새로운 자극을 주게 된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내담자들에게 집을 벗어나서 여행을 다녀와 보도록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행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해외를 가거나 멀리 갈 필요는 없다. 평소 가보지 않은 바닷가나 가까운 산을 찾아도 좋다. 다만 평소의 습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행동하고 느껴보면 좋다. 일상에서는 늘 효율적으로 움직였다면 휴가 때는 좀 느슨하게 다녀볼 수 있겠다. 시간별로 방문지를 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노선을 짜고 갈 때마다 인증사진을 남긴다면 휴가를 끝내고 나서는 어디 어디를 방문하고 사진이 남았다는 결과물들로 제법 ‘생산적인’ 휴가를 보냈다는 느낌은 들지만 쉬었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 이렇게 휴가를 즐기는 것은 일의 연장선과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살았다면 이번 휴가 때는 그런 불안을 좀 내려놓자. ‘불안’은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감정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개봉되어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서 소개되는 새로운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인류문명의 발전 동력을 많은 과학자는 뇌의 예측하는 능력으로 꼽고 있다. 어떤 일을 경험하고 그 정보를 저장해서 현재의 의사결정을 하고 앞날을 준비하려면 다가올 일을 미리 예측해야 한다. 학생들은 다가올 시험을 예측해서 공부하고 미래를 대비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라면 올 여름의 유행음료를 예측하고 방문할 고객 수를 미리 가늠해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뇌의 예측하는 능력에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와 불안이다. 매사 느긋하고 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거나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시험을 한번 망치고 성적이 떨어진 경험과, 그와 관련된 당황이나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이는 미리 준비할 동력이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의료진이라면 최선의 치료를 위해서 첫 번째, 두 번째 전략을 순차적으로 세워두기 마련이다. 처음 시도한 수술이나 치료 방법이 잘 맞지 않거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비하지 않았다가 곤란한 일을 겪은 경험들이 불안토록 하고 미래를 예측해서 준비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불안과 초조함이 어느 순간 디폴트 값이 되어 버리자 몸과 마음의 과부하가 걸린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은 곧 공황장애나 몸의 스트레스 반응들로 나타나게 된다. 메스껍고 소화가 안 되며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쉽게 피부 알레르기가 생기는 등의 반응들이다. 퇴근하면 불안의 스위치를 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24시간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불안이’가 토네이도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올 여름에는 감정의 소용돌이 스위치를 끄고 여행을 떠나보자. 제발 그때는 평소 하던 일이 담긴 노트북은 두고 가자. 걱정과 근심은 집에 남겨두고, 오로지 새로운 감정에만 집중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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