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정훈·백해룡 고난과 권익위 국장 죽음이 말하는 것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조사를 총괄하던 국민권익위원회 국장급 간부의 죽음이 던진 충격파가 커지고 있다. 권력형 비리 사건을 수사·조사한 사람들이 좌천당하고 항명죄 올가미로 재판받다, 이제는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목도하게 됐다. 반대로 의혹 당사자들은 여전히 사과 없이 입 다물고 진실 덮기에만 급급하다.
11일 언론 보도를 보면, 권익위에서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을 맡은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의 죽음에 외압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간부는 사건 조사가 한창일 때부터 “고위 인사와 자꾸 부딪친다”고 하소연했다. 또 조사 종결 후에는 “권익위 직원들의 전반적인 생각과 다르다”며 송구스러워했다고 한다. 권익위가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다’면서 김 여사 사건을 종결한 걸 두고 한 말이다. “‘20년 가까이 부패방지 업무를 해온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라며 힘들어했다”는 증언도 있다. 대통령 부인 사건 처리에 압력을 받고, 극심한 자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린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한 권익위 결정은 ‘여사권익위’란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담당 국장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준 권익위 처분에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와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 외압과 직권남용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 권익위는 반부패총괄 기구로서 직원의 양심과 상식에 따라 독립성이 보장되도록 개혁해야 한다.
권력형 비리를 조사한 실무 책임자 의견이 무시되고, 되레 징계·질책 대상이 되는 비상식이 일상화하고 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당시 임성근 해병대 사단장을 피의자로 적시하자 대통령이 격노했고, 그 후 해병대 수사는 180도 바뀌었다. 지난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마약 조직원들과 인천국제공항 세관 직원들의 유착 의혹을 수사하던 백해룡 경정은 “용산에서 아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결국 좌천당했다. 백 경정은 당시 수사 결과를 발표하려 하자 서장이 대통령실을 거론하며 연기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의당 해야 할 일을 하던 공직자들이 왜 고난과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검경 수사와 권익위 조사가 지체되고 겉돌고 있다. 제도와 상식에 어긋나는 권력의 압력에 맞서 국민적 의혹을 풀다 비극을 맞는 공직자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야당은 특별검사와 국회 국정조사·청문회를 통해 권력형 비리 의혹들은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재발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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