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헌법 근간 흔드는 노란봉투법 재고돼야
지난 5일 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경제계는 산업현장의 공멸을 막기 위해 한목소리로 개정안 입법 중단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정부 여당과 재계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오히려 해당 법안이 '친시장, 친기업법'이라며 입법을 강행했다.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다. 당시에도 야당은 개정안이 내포하고 있는 법체계의 부정합성과 산업현장에 미칠 혼란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경제계와 업종별단체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음을 호소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안의 위헌적 요소와 충분한 협의 및 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고, 결국 국회로 환부된 법안은 재의에 붙여져 폐기되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은 사용자에 대한 다수의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 이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도입해 사용자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만으로 사용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특정할 수 있겠는가. 개정안은 사전에 특정할 수 없는 다수의 사용자들이 노동조합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자동차, 조선업, 철강업, 건설업 등의 경우 다수의 협력업체와의 협업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개정안에 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은 수십, 많게는 수천 개의 협력업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청업체는 경영주체로서의 의사결정 권한과 영업의 자유가 침해될 뿐만 아니라 원·하청 산업생태계가 파괴되고, 종국에는 하청업체의 도산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개정안은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했다. 기업의 투자 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 사항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심각한 경영차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당해고 구제 등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까지도 힘의 논리에 의한 해결 시도로, 산업현장은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으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개정안은 노조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했다. 공동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한 민법의 일반원칙을 무시한 채, 손해배상을 개개인별로 나누어 묻도록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불법쟁의행위는 조합원들이 복장을 통일하고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린 상태에서 행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에게 불법행위에 대한 귀책사유나 기여도를 개별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사용자에게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감내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22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21대 국회 개정안보다 더 심각한 내용을 추가했다. 노조 가입 제한 요건을 완화해 자영업자 등 근로자가 아닌 자들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고,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방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하도록 했다. 이는 사인의 자력구제를 금지하는 법치주의 원칙에 반한다.
최근 세계은행은 한국을'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하면서 투자(Investment), 기술도입(Infusion), 혁신(Innov- ation) 등 '3I 전략'이 주효했으며, 생산성을 높인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저성장 고물가 등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속에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합리적 규제완화, 특히 노동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발생할 산업현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기업의 경영효율성과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노사관계는 파탄에 이르고 투자에 큰 타격을 초래할 것이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미래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노동조합법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묻고 싶다. 이 법안이 가져올 노사관계와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 거부권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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