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아 솟아라! 80년대 전국은 ‘황금수맥’ 구멍 뚫기 경쟁
- 천공 확보해야 업체 수익성 커
- 과거 용출 노다지 찾아 개발 붐
- 1㎞ 수맥 굴착에 비용 수억 원
- 적정온도·양수량 갖춰야 상업화
- 동래온천 16곳중 자체보유 6곳
- 양정 국제식품 공사중 발견 대박
- 국내 온천공 중 미개발 900여 곳
- 북항 해수온천도 향후 사업계획
동래·해운대온천의 목욕탕에는 굴뚝 대신 ‘냉각탑’이 솟아있다. 목욕탕 굴뚝은 본디 목욕물을 데우기 위해 필요한 것. 하지만 ‘온천공’에서 곧장 끌어올린 온천수는 목욕물로 썼다가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김이 펄펄 난다. 그러니 목욕하기에 적당한 온도까지 식혀 써야 한다.
뜨거운 온도 덕에 온천수는 원래 상태에 가깝게 목욕객을 맞이할 수 있다. 목욕탕들이 돈을 들여 온천공을 뚫는 이유다. 일례로 동래구 온천동 ‘녹천탕’과 ‘녹천호텔’은 총 7개의 개인소유 온천공을 보유 중이다. 두 곳은 1962년 문을 연 ‘녹천탕’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 시설이다. 이곳에서 뿜어진 온천수는 최고 69.5도에 이른다. 37년 차의 박세영(62) 녹천탕 시설관리부장은 “사설 온천공을 보유한 온천시설은 배관을 많이 거치지 않기 때문에 원 상태의 온천수를 이용객에게 바로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동래온천을 이용하는 업체는 16곳(휴업 3곳·사용예정 1곳 제외)이다. 이중 6곳(휴업 1곳 제외)은 온천공을 자체 개발해 사용한다. 절반 이상인 10곳은 부산시가 관리하는 ‘양탕장’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양탕장이란 온천공으로부터 끌어올린 온천수를 각 업소로 급수하기 위해 설치된 펌프시설을 일컫는다. 해운대 온천원보호지구 내 시설 8곳(휴업 2곳 제외) 중에서는 절반인 4곳이 양탕장 물을 사용하고 있다.
동래 양탕장은 평균 67도 내외의 온천수를 저탕조에서 45도 수준까지 식힌 뒤 각 영업장으로 보낸다. 해운대 양탕장은 평균 56도 내외의 온천수를 35도까지 낮춰 공급한다. 배관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물 온도는 더 내려간다. 이 때문에 하루 내내 온탕을 따듯하게 유지하려면 난방장치를 갖추거나 뜨거운 온천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뜨거운 물을 바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난방에 드는 비용이 상당 부분 절감된다. 온천공이 딸린 땅에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다. 영산대 서정렬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입지와 개발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나, 온천공보호구역은 특수토지로 분류돼 많게는 일반토지의 4~5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온천 금맥’을 찾아서
온천관광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는 골드러시를 방불케하는 ‘스파러시’가 이어졌다. 온천 노다지를 꿈꾸는 이들이 수맥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구멍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40여 년째 온천·지하수 개발업에 몸 담고 있는 남호지질 문수성(74) 대표는 “1980~1990년대가 온천 개발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며 “부산 해운대부터 강원도 속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온천공을 뚫어달라는 의뢰가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물론 모든 땅이 온천수를 허락하진 않았다. 문 대표는 “지금은 성공률이 90%에 달하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는 수맥 파악이 쉽지 않았다”며 “10군데 파면 1~2군데 물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10~20% 내외 합격률에 도전하는 ‘용출 고시’였던 셈이다. 이렇게 솟은 물은 ‘25도 이상의 수온’과 ‘300t 이상의 일일 양수량’을 충족해야 비로소 온천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기술 발전으로 온천을 발견할 확률은 높아졌다. 그러나 이를 개발하는 일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온천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온천부존조사 ▷굴착공사 신고 및 수리 ▷굴착공사 실시 ▷온천 발견신고 ▷‘온천공보호구역’ 지정 ▷동력장치 등 설치·이용 허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 대표는 “1㎞를 굴착하는 데 약 2억 원의 비용이 든다. 만약 온천이 솟지 않으면 땅을 원상복구해야 한다. 폐공할 경우 1m 당 약 3만 원의 금액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부산 내 온천의 굴착 심도는 얕게는 100여m부터 깊게는 1㎞를 훌쩍 넘긴다. 폐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온천공 하나를 개발하는 데 쓰이는 공사비는 수억 원에 달한다.
▮하늘이 점지한 온천 샘
기회는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했던가. 하늘이 점지한 듯 기대치 않은 온천수가 솟아나온 곳도 있다. 지난해 문을 연 ‘국제식품’ 양정점의 이야기다. 이곳은 건물 7층과 9층에서 ‘국제광천수온천’을 운영한다. 아래층에는 고깃집이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특이한 구조다. 국제식품 정의석 총괄본부장은 “식당과 정육백화점만을 건립하려 했으나, 지질조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온천 수맥이 발견되면서 설계가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땅을 파낸 결과, 단 한 번의 시도에 온천이 터졌다. 지하 851m에서 53도의 약알칼리성 광천수 온천이 발견된 것이다. 정 총괄본부장은 “양정점의 온천수는 피부자극이 적은 데다 유황성분을 함유해 염증 완화에도 효능을 보인다”며 “목욕탕 뿐만 아니라 수영장·샤워실에도 온천수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개장 이후 약 20만 명의 이용객이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온천은 아니지만 ‘지하수’가 터지며 쾌재를 부른 이도 있다. 영도구 남항동 ‘영도해수랜드(2000년 개업)’에는 원래 마트와 자동차 정비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두 업체를 운영하던 임승철(65) 대표는 인근에 생긴 대형마트 때문에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폐업을 택한 그는 “인근 공장에 노동자가 많으니 목욕탕을 차려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인의 조언에 목욕탕을 짓기로 결심했다. 굴착 공사가 시작되고 260m를 파 내려가자 지하에서 물이 솟기 시작했다. 지하수를 유심히 지켜보던 시공업체 대표가 외쳤다. “사장님, 물이 터진 게 아니라 돈이 터진 것 같은데요?”
이 부지에서 솟아난 물은 고농도의 칼슘과 염분을 함유한 ‘지하염수’로 각질 제거에 효능을 보였다. 2002년에는 이 염수를 활용한 화장품이 개발돼 판매될 정도였다. 임 대표는 “판매를 시작하고 3개월 동안 홈쇼핑 매출이 24억 원에 이르렀다”며 “이를 두고 지인들이 21세기 ‘봉이 김선달’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용천을 기다리며
비록 팬데믹으로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지만, 온천은 여전히 매력적인 자원이다. 행정안전부 ‘2023 전국 온천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천은 모두 256곳이다. 4629만9500평에 달하는 국토가 ‘온천 구역’으로, 뚫어놓은 온천공의 수는 1166개에 이른다.
부산 곳곳에서도 미처 용천하지 못한 샘들이 솟아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2018년 영도구 청학동 일대에서 온천이 발견됐다. 해당 온천공에서는 26.8도의 광천 온천수를 하루 400t 끌어올릴 수 있다. 영도구는 이곳을 이듬해인 2019년 온천공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태종대 온천 이후 20여 년 만에 솟은 영도구의 유이한 온천으로, 부산항대교와 인접한 덕에 새로운 수변 명소로 개발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5년이 흐른 현재까지 이곳은 공터로 남아 있다. 구 관계자는 “땅 소유자가 직접 온천을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아직까지 온천업에 필요한 동력장치 설치 허가 요청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공사가 한창인 ‘부산항 북항재개발 사업지’ 일대는 지난 2016년 ‘온천원보호지구’로 지정된 바 있다. 공사 과정에서 32.9도의 해수 온천수가 발견된 것이다. 온천원보호지구란 온천 발견 지점을 포함한 3만㎡ 이상의 면적에 대해 추가로 온천을 개발하고자 할 때 온천법에 따라 시·도지사가 지정할 수 있다. 2017년 11월에는 해당 온천수를 활용한 무료 족욕탕이 문을 열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수요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본격적인 온천 개발은 잠시 미뤄둔 상태다.
대한온천학회 정찬호 학술부회장은 “최근 관광·휴양·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천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만큼, 온천자원의 개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교수 역시 “온천을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부가가치가 높은 부동산 상품을 만들 수 있다”며 “설령 빈 땅이더라도 일반토지에 비해 높은 가격대로 공시되는 만큼 부동산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자원”이라고 전했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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