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균형은 기울어진 후에 잡힌다

안승현 2024. 8. 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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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현 경제부장
흔히 금리정책을 놀이터에 있는 시소에 비교하곤 한다. 시소에 올라 탄 아이들처럼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쪽이 올라가고, 균형을 잡으려 하면 또 다른 쪽이 내려가는 모습과 비슷해서다. 지금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딱 그 시소와 같다.

고금리로 인한 경제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 소비도, 투자도 주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 댁에는 오래된 '뻐꾸기시계'가 있었는데 너무 낡아서 가끔씩 멈춰 서는 고장난 물건이었다. 할머니는 쉴 때 쉬어야 제 시간을 찾지 않겠냐며 내버려두라 하셨다. 지금 우리 경제가 그렇다. 너무 오래 고금리로 달려온 탓에 제 박자를 잃은 듯하다. 이제는 쉬어가며 제 흐름을 찾아야 할 때다.

한국은행을 향해 '금리 좀 내려라'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마치 목마른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절실해 보인다.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 소비도, 투자도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고금리의 쇠사슬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5%로 낮췄다. 0.1%p 내린 것이지만, 그 속엔 우리 경제의 숨막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장둔화는 내수부진 때문'이라는 KDI의 말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현실로 확인할 수 있다. 동네 가게들의 한숨 소리, 텅 빈 백화점의 적막감이 바로 그 증거다.

한국은행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집값이 오르고, 물가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영양실조로 쓰러질 판국에, 살찔 걱정을 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당장의 고통이 큰데, 미래에 닥칠 일만 상상하고 있는 꼴이다.

미국은 9월 금리인하를 예고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려는 모양새다. 그런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얼음은 한순간에 얼지 않는다. 날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대비하지 못하는 동안 경제한파에 꽁꽁 얼어붙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말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 따져야 할 것은 국민의 삶이다. 지금 우리에겐 살아 숨쉬는 경제가 필요하다.

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산소호흡기를 씌운다고 중환자가 벌떡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수술하고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되살리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해야 일자리도 늘고, 가계 살림살이도 나아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고민하는 모습은 마치 시소 위의 아이 같다. 이쪽으로 가면 저쪽이 오르고, 저쪽으로 가면 이쪽이 내려간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시소의 균형은 항상 한쪽으로 과감히 기울어뜨린 다음에야 찾을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 있는 결단이다.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를까, 집값이 뛸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숨 막히는 경제에 숨통을 터주는 게 더 중요하다. 할머니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 경제도 잠시 쉬어가며 제 박자를 찾아야 할 때다.

금리정책은 외줄타기 곡예와 같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균형을 잃고 떨어질 수 있어서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세 개의 공을 동시에 저글링하는 광대다. 독립성도 지키고, 경제도 살리고, 물가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목소리다. 지금도 "밥값 좀 내려주세요" "집값 좀 잡아주세요" "일자리 좀 만들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금리정책으로 이 모든 요구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이 최선의 선택을 하게 하고, 그것이 우리 경제의 시소를 잠시나마 균형 있게 만들어주길 기대할 따름이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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