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생각하는 몇가지 패배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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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이 되면 언론에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배와 그와 관련된 평화의 문제를 보도한다.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내부의 위협을 마주하지 않고, 국가의 쇠퇴를 막기 위한 정책을 소홀히 한 결과 전쟁이 아니더라도 망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전후 일본은 군사적 패배 후 경제 대국을 목표로 부흥을 이뤘고, 1980년대에는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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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매년 8월이 되면 언론에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배와 그와 관련된 평화의 문제를 보도한다. 평소엔 전쟁의 역사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 언론이 8월에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을 보고 ‘8월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년은 패전 80년이 되는 해로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일본인은 극히 일부가 되고 있다. 머지않아 ‘8월 저널리즘’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80년 전 일본인, 특히 정치와 군부 지도자가 왜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하게 했는지 집요하게 살펴보는 것은 일본이 앞으로 지속가능한 나라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전쟁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내부의 위협을 마주하지 않고, 국가의 쇠퇴를 막기 위한 정책을 소홀히 한 결과 전쟁이 아니더라도 망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패배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이해해야 한다.
애초 1941년 12월 미국·영국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는 전쟁을 벌인 것은 어리석은 의사결정 때문이다. 첫째 자국과 적국의 병력과 그 기반이 되는 공업 생산력, 자원의 양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없었다. 둘째 전쟁을 시작한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어떤 상황을 ‘목표 달성’으로 상정해 전쟁을 끝내려고 했는지 기준도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어리석은 판단은 계속됐다. 목표가 불분명한 작전에 병사가 투입되고, 식량 등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병사들이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거나 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버마(현재 미얀마), 뉴기니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또 바다와 하늘을 빼앗기고 물자 수입이 끊겨 더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전쟁은 중단되지 않았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가장 분노를 느끼는 것이 1945년 7월26일 연합국의 최후통첩인 포츠담 선언이 나오고 8월14일 일본이 수락하기까지 보름 이상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 사이 히로시마(8월6일)와 나가사키(8월9일)에는 원폭이 투하됐다. 포츠담 선언의 수락 여부를 놓고 당시 지도자들이 격렬하게 논쟁을 한 것은 천황(일왕)제 존속을 둘러싼 해석의 대립 때문이었다. 지도자들이 도쿄에서 회의를 계속하는 사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수십만명이나 사망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집함으로써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됐다는 점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강하다’는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해서다. 전후 일본은 군사적 패배 후 경제 대국을 목표로 부흥을 이뤘고, 1980년대에는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끝난 1990년대 초부터 30여년 동안 일본은 완전히 쇠락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대만에 뒤졌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값싼 나라’가 됐다. 인구 감소는 가속화되고 있고, 정부 기관의 추계로는 2070년 일본 인구는 8700만명, 이 가운데 10%가량을 외국인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일본의 쇠약은 다른 나라와 싸워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경제의 모순을 방치한 결과다. 과거의 영광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몰락을 직시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지속한다면 더 큰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1945년과 지금의 차이는 민주주의다. 과거엔 국민이 군인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정치인은 가능하다. 필요한 대책을 제안·실행하는 정치인을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 패배에서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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