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기 없어도 추진한다던 연금개혁…국회로 떠넘긴 尹정부
先 국회 의제 설정·後 정부 참여키로 방침
여야 동수 참여하는 특위에서 논의해야 주장
국회로 책임 떠넘겨 개혁의지 상실 지적도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정부·여당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연금개혁안을 정부가 아닌 국회에서 만들도록 방향을 정했다. 윤 대통령이 “인기가 없어도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강조해왔던 연금개혁이 멈춰선 상황에서 정부안을 먼저 내놓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정이 주도해 책임있게 추진해야 할 연금개혁을 정쟁으로 일관하는 국회에서 떠넘기게 되면서 사실상 개혁의지가 실종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野 “정부안 마련, 협의체 尹 참석해야”…與 “특위부터 구성”
대통령실은 ‘선(先)국회 의제 설정·후(後) 정부 참여’ 방식을 통해 17년 만의 연금개혁의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잠재우기 위한 차원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1일 “정부 주도로 연금개혁안을 마련하면 국회 의석 3분의 2를 차지한 야권이 반대하면서 정쟁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며 “여야 동수의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한 이후 고위급 여·야·정 협의체 등 연금개혁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 8일 여야 원내대표들이 여야정 민생협의체 구성을 위한 첫 실무 협의에서 연금개혁을 서두르자고 한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한 답변이다.
대통령실은 정부안을 먼저 냈을 경우 민주당의 반대뿐 아니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여권 관계자는 “연금개혁안은 어차피 국민 부담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 반대 여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연금 개혁안을 요구하는) 민주당은 실패한 마크롱식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정부·여당은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여 결국 직권으로 의회마저 통과시켰다. 이후 각종 파업과 대규모 시위 등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며 지지율이 급락하고 임기가 3년 남은 상황에서 야당에게 국정 운영 주도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이 이런 비슷한 상황을 노리고 정부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여권 내 분석이다.
더 내고 더 늦게 수령 불가피…구조개혁도 진행
문제는 국회에서 여야간 연금개혁에 대한 합의를 하기 요원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여당에서는 물밑 접촉을 통해 상설 연금개혁 특위 구성을 꾸준하게 제안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관련 상임위원회이자 야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보건복지위에서 논의하자며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연금개혁 논의 기구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막혀 있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연금 논의가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되면 여야 의석수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야당에 끌려가고 결국 개혁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기초연금, 퇴직연금, 직역역금 등 연금 체계 전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여야 동수의 특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 내용에 있어서도 여야 이견이 크다. 민주당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 개혁을 우선 추진하고 추후에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구조 개혁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실은 이번 정부에서 연금개혁을 완결짓기 보다는 개혁 동력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연금 체계 전반을 살피고 기본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 정부에서라도 이를 이어받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연금개혁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지 이를 국회로 떠넘기는 것은 사실상 연금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금의 정치 지형이라면 3년내내 공전만 하다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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