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병원비 1000만원 쓰면 VIP"… 환자 등급 매겨 은밀히 거래
보험 실비한도따라 환자 구분
"700만원 쓰면 20% 돌려준다"
환자 유치 혈안…불법 눈감아
브로커와 환자들이 한팀 이뤄
돈 더주는 병원으로 옮기기도
요양급여비 허위 청구도 예사
작년 적발 금액만 200억 넘어
지난해 전북 전주의 한 암 전문 요양병원은 한 달 동안 입원비를 700만원 이상 쓰면 20%, 통원 치료 시 17%를 현금으로 돌려주겠다며 환자들을 유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사 관계자는 "입원할 경우 최소 300만원 이상 입원비를 사용해야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의사는 "환자들의 보험 실비 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며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려주는 환자는 VIP, 500만원 이상 쓰는 환자는 1등급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를 데려오는 대가로 병원에 뒷돈을 요구하는 불법행위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입원비 결제금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명 '페이백(pay back)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면서 요구에 응하지 않는 정상적인 요양병원들은 환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소개알선 행위를 위반한 요양병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은 환자부담금을 할인해줘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경찰에 고발됐다. 이후 보건당국에 의해 적발된 불법 페이백 요양병원은 공식적으로는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속이 안 됐을 뿐 여전히 페이백을 미끼로 환자들을 데려오고, 이를 눈감아주는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암 전문 병원을 개원한 한 원장은 "브로커와 암 진단을 받은 지 3~4년 된 환자들이 팀처럼 움직이며 병원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면서 "특히 개업한 병원을 대상으로 기존 병원에서 받았던 페이백 규모를 넌지시 알려주며 흥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소개알선 유인이 이뤄질 경우 의료법 제27조 제3항에 따라 의료인 자격정지는 물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페이백 관행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환자들이 보험을 활용하면 개인 돈이 나가기는커녕 돈을 받으면서 병원에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암 치료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많다. 예컨대 수도권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는 면역세포치료제 가격을 500만원, 영양제(90포 기준) 가격을 135만원으로 제시했다. 치료비용이 비싸 보이지만 가입해놓은 보험을 활용하면 연간 5000만원, 많게는 1억원까지 치료비용을 커버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치료 가능 시점이 훨씬 지난 암 환자들을 골라 영양제 주사 정도 놔주고 매달 실비에서 1000만원을 보전받아 일부는 페이백으로 환자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병원이 먹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부 병원은 진료하지도 않은 환자를 마치 진료한 것처럼 허위 청구해 요양급여비를 타내 적발되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울산에 위치한 B요양병원은 하지도 않은 의료 행위를 거짓으로 청구해 요양급여비를 타내 2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전북 익산에 있는 H요양병원 역시 진료비를 허위 청구해 111일 동안 업무정지를 당했다.
전진숙 의원실에 따르면 요양병원들이 거짓 청구해 징수가 결정된 급여액만 지난해 202억원에 이른다. 전체 환수 대상 금액 중 미징수액 비중은 2020년 2.8%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11.8%로 뛰었다. 암 치료 대부분이 비급여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만큼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허위 청구까지 포함하면 액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한국사회복지학회장)는 "이 같은 브로커들로 인해 국민건강보험 허위 청구와 요양병원의 과잉 의료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며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누수가 생기고 의료 보장 생태계까지 무너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범 기자 /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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