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활동가 허위정보 뿌리자…영국 전역, 반이민 시위로 흔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영국 사우스포트 지역의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여아 3명이 10대 청소년에게 흉기로 습격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팔로워 90만명 이상을 거느린 극우 활동가 토미 로빈슨(본명 스티븐 약슬리레넌·41)은 허위 조작 정보를 끊임없이 공유했다.
당시 텔레그램과 엑스 등에선 이번 사건의 10대 용의자 이름이 이슬람식인 ‘알리 알샤카티’로 2023년 보트를 타고 건너온 망명 신청자이며 무슬림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용의자는 사실 기독교도가 다수인 르완다 출신 부모에게서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지만 허위 정보 게시물은 삽시간에 공유됐다. 엑스 게시물 수만 보면, 사건 3일차엔 ‘망명’ ‘이슬람’ ‘이민자’라는 표현과 사우스포트 지역을 엮은 게시물 수가 2만8500개에 달했다.
영국 극우 세력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급속한 파급력을 이용해 정보를 조작하고 선동했다. 로빈슨은 2009년 반이슬람·반이민 활동으로 악명 높았던 극우 단체 영국수호리그(EDL)의 공동 설립자로, 이슬람 사원 주변에 돼지 머리를 놓는 행동 등을 벌여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여아 흉기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런던에서 열린 2만~3만명이 모인 대규모 극우 집회 주최자이기도 했다. 그는 여아 사망 사건 다음날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기보다 정신건강 문제가 더 많다는 증거가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무슬림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분 단위로 올려왔다.
영국 언론이 그의 오른팔로도 묘사하는 측근 대니얼 토머스는 “준비하라”며 행동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등 로빈슨과 함께 폭력 시위를 부채질했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 아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우리 아이들이 공격당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지금 나가야 한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인사의 메시지와 영상은 특정 단체나 정당을 구심점 삼아 움직이지 않는 영국 극우를 움직이는 강력한 촉매가 된다. 로빈슨이 설립한 영국수호리그도 지금은 단체로서의 기능을 멈췄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결집과 해체가 가능한 메시지앱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 단체와 극우 정치인들이 허위 정보를 퍼뜨리며 세를 불리고 있다. 극단주의 활동을 연구하는 호프낫헤이트(Hope not Hate)의 책임자 조 멀홀은 “누가 이런 (극우 시위를) 기획했는지 알아본 결과, 누군가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해 토요일 3시에 모이자는 글을 올렸지만 아무도 그가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미국의 디지털혐오대응센터(CCDH)는 어린이 흉기 사망 사건 이후 지난 5일까지 8일간 로빈슨의 엑스 계정을 분석한 결과, 그의 게시물은 평균 543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 살인 사건을 무슬림과 연결해 쓴 게시물의 조회수만 1300만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폭발적인 이용자 증가는 소셜미디어에도 돈이 된다. 디지털혐오대응센터는 로빈슨의 게시글에 대한 폭발적인 조회수로 인해 엑스 역시 연간 최대 1900만달러 수준의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2018년 3월 트위터(현재의 엑스)는 무슬림에 대한 로빈슨의 혐오 발언 등을 문제 삼아 그를 영구 제명 조처한 바 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제명 조처가 철회됐다. 로빈슨은 지난해 11월 트위터에서 이름이 바뀐 엑스에 복귀했다. 그는 지난달 런던에서 열렸던 대규모 집회에서 머스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취임 한달여 만에 극우 폭력 시위를 맞닥뜨린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셜미디어 규제 강화의 뜻도 내비쳤다. 영국 정부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합법적이라도 유해한’ 콘텐츠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고려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극우에 대항하는 시민들은 조직하고 연대해 싸울 것을 호소한다. 실제로 지난 7일 12개 지역에서 극우 반대 집회가 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인종주의 단체를 비롯한 국제인권, 노동, 여성단체 등이 연대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시위를 알리고 확산시킨 결과다.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루이스 닐슨은 한겨레에 “역사적으로 극우는 언제나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캠페인을 열고, 모일 때 행동을 멈췄다”며 “이건 경찰이나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넓은 연합을 만들어 극우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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