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값 하락에 신차 계약취소까지… 업계 대응마련 고심
현대차, 배터리 정보 최초 공개
LG 등 배터리 안정성 강화 박차
일부 지자체는 규제 개선 나서
"당분간 중고 전기차의 매입 자체를 할 계획이 없습니다." 인천 중고차 매매업체 사장 A씨는 1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벤츠 화재 사건 이후 전기차 매입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지겠지만, 중고 전기차 가격을 낮춘다고 소비자들이 이런 분위기에 전기차를 사겠냐"며 이같이 밝혔다.
◇중고 전기차 매물 184% 급증·잇따른 완성차 예약 취소 행렬=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중고차 시장까지 덮쳤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차량 화재 이후 불안감으로 전기차를 매물로 내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전기차 매입을 중단하는 업체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인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간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은 직전 주 대비 1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접수된 매물 중 화재가 난 EQ 모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로, 직전 주(0건)보다 늘었다.
중고차 온라인 판매 플랫폼 기업 엔카닷컴 역시 지난 1~8일 접수된 '내 차 팔기' 매물 중 EQE 모델(EQE V295·EQE SUV X294)은 총 13대다. 이는 지난달 한 달간 접수된 물량(5대)을 뛰어넘는 수치다.
물량이 늘면서 중고 전기차 가격은 모두 하락세다. 엔카닷컴의 '8월 자동차 시세'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1.97%, 1.11% 하락했다. 특히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는 각각 2.61%, 3.36%의 평균보다 큰 가격 하락 폭을 보였다.
완성차 업계는 이미 비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신차 출시로 돌파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전기차 화재라는 대형 악재가 터진 것이다.
올해 하반기 국내에는 기아 EV3부터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아이오닉7을 비롯해 볼보 EX30, GM 이쿼녹스, 폴스타 폴스타4 등이 줄줄이 출격을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예약 취소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예약을 취소했다" "눈치 보여 어쩔 수가 없다" 등이 취소 후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서울시와 충남도는 내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경남도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을 지상이나 출입구 근처에 설치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현대차 '제조사' 첫 공개·배터리 업계도 대응 분주=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포비아 대책에 분주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전날 홈페이지에 현대차 10종과 제네시스 3종 등 총 13종의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직접 공개했다.
이는 국내 완성차업체 중 처음이다. 전기차 화재 이후 배터리 제조사 관련 문의가 쇄도하자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이 추진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부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유럽에서도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 공개해야 한다.
배터리 업계도 현재 개발 중인 안전성 강화 기술 개발에 한층 더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배터리 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상용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지라 노심초사 하는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소재 면에서 모듈에 방화 소재를 적용하고 발화되더라도 배터리 팩 밖으로 불이 번지는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소재로 팩을 생산한다. 또 모듈과 팩에 쿨링 시스템을 적용해 열이 전이되는 상황을 차단한다.
프리미엄 제품인 하이니켈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니늄)는 설계 최적화를 통해 열 제어 기술을 향상했다. 니켈 함량을 50∼60% 수준으로 낮추고 망간 함량을 높인 고전압 미드니켈 NCM((니켈·코발트·망간)의 경우 발열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열 안전성이 30% 이상 높다.
올해 말 양산 예정인 원통형 46-시리즈에는 셀 단계에서 배터리 내부 폭발 에너지를 외부로 빠르게 배출시켜 셀의 저항을 줄이고 연쇄 발화를 방지하는 '디렉셔널 벤팅' 기술을 적용한다.
삼성SDI는 배터리 폼팩터 중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각형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각형 배터리는 넓은 밑면으로 하부 냉각판과 접촉면을 키울 수 있어 구조상 발열 전파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내부 가스를 내보내는 배출구와 특정 전류가 흐를 때 회로를 차단하는 퓨즈 등 각종 안전장치가 있는 점도 특징이다.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형태로 쌓는 'Z폴딩' 기법을 통해 배터리 셀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양극과 음극의 접촉 가능성을 차단해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추는 기술을 도입했다.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양극활물질의 구조적 안전성을 높이고 배터리 장기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원소 배합을 조정하는 복합 도핑 기술도 상용화했다.
◇정부 대책 마련에 속도…"화재 계기로 제도 정비 필요"= 정부 역시 12일 긴급회의를 앞두고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의무 표기를 포함해 전기차 화재의 주된 원인 중 과충전 방지장치 보급 확대, 충전기 지상 설치 유도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13일에는 업계 관계자들도 불러 의견을 수렴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도 자체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서울시와 충남도는 내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을 통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경남도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을 지상 또는 출입구 근처에 설치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의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면서 전기차 구매율이 떨어지게 되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를 조기에 불식시키기 위해 빠르게 조처한 것"이라며 "이번 화재를 계기로 배터리 제조사 표기를 포함해 다양한 제도를 정비하고, 올바르게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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