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플루언서’, ‘어그로’는 이렇게 끄는 거야[봤다 OTT]
‘어그로(Aggro)’는 요즘 온라인상에서 게임을 시작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다. 영어단어 ‘애그러베이션(Aggravation)’의 속어로 도발, 타인의 공격적인 성향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어그로를 잘 끈다’는 의미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돼 ‘타인의 관심이나 주의를 끈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다.
수많은 매체와 선택이 있는 시대다. 그에 따라 짧은 순간 타인의 관심을 끄는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존재의 의미일 수 있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는 이 ‘어그로’를 누가누가 잘 끄느냐의 여부를 놓고 시작된 최초의 서바이벌 예능이다.
‘더 인플루언서’는 흔히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스트리머, 크리에이터 등으로 칭해지는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이 그 자웅을 겨루는 대회다. 총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최초 77인의 참가자에서 1인으로 추려진 우승자가 상금 3억원을 취하는 경쟁이 줄거리다.
처음 이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공개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들었던 가장 큰 궁금증은 그 ‘어그로’ 다른 말로는 영향력이나 존재감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느냐였다. 단순히 그 잣대를 ‘구독자수’ ‘팔로워수’로만 판단한다면 참가자들의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쟁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모두의 플랫폼이나 소재가 달랐기에 이를 같은 기준에 놓을 수 있을는지가 관건이었다.
과거 MBC에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비슷한 형태의 ‘1인 방송’ 콘텐츠를 선보였던 이재석PD의 사유는 상당히 깊었다. 그는 이러한 복잡한 체제 속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기준은 혼란만 가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단순하게 이 ‘어그로’를 놓고 승부를 벌이기로 작정했다.
77인의 참가자는 1라운드 ‘좋아요 싫어요 투표’와 2라운드 라이브 방송, 3라운드 피드 사진 촬영 등 현재 공개된 3가지 과제를 통해 4회까지 총 14명으로 추려졌다. 처음 77인의 총 팔로워수는 각자의 지분에 따라 3억원을 차등해 나누는 형태로 지급됐으며, 게임을 통해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의 상금을 취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작진이 이 ‘어그로’를 중점에 둔다는 모습은 여러 과정에서 목격된다. 첫 라운드 보통 ‘좋아요’는 선호하고 ‘싫어요’는 꺼릴 수 있지만, 제작진은 ‘싫어요’ 역시 관심의 일부라는 사실을 숨겨놓고 이 두 투표의 합산 수치로 순위를 가렸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에 역시 30명 중 1시간 동안 5명의 합격자, 탈락자를 정해놓고, 후반 1시간 동안 나머지 20명을 5분 단위로 한 명씩 붙이고 떨어뜨리며 긴장감을 배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점점 이 서바이벌이 방송의 질이나 철학, 내용이 핵심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순히 시선을 끌어모으는 자체가 ‘인플루언서’의 생존수단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스트리머이자 연출자인 진용진이 이 사실을 따로 깨우치며 적용해가는 과정에 주목하며 그의 분량을 크게 잡는다. 진용진은 피드 사진에서도 내용보다는 액정에 금이 가는 효과를 주면서 보는 사람이 1차원적 시선을 붙잡는 데 노력한다.
대략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더 인플루언서’의 우승자는 내외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고 제작진은 이 ‘썰’을 따로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재석PD의 말대로 이 서바이벌은 우승자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 ‘어그로’의 핵심을 파악해가는 과정을 깨우치는 재미를 주고 있다.
물론 콘텐츠의 깊이나 질,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서바이벌의 교훈은 다소 허탈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4000억원 규모의 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그런 깊이에 주목하지 않는다. 구독자수, 팔로워수, 시청자 수치만이 모두를 재단할 뿐이다.
따라서 이를 미리 알아챈 제작진의 통찰력이 그 어떤 인플루언서의 ‘어그로’보다 높을 수 있다. 제작진은 치밀한 설계와 운용을 통해 가장 큰 ‘어그로꾼’은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그로는 무엇이고, 어떻게 끌어야 하는가. ‘더 인플루언서’는 그 좋은 교재로 보인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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