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여성의 난자 동결을 허하라…차별·무례와 싸운 쉬자오자오의 5년[시스루 피플]

박은하 기자 2024. 8. 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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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자오자오가 2021년 9월 17일 베이징차오양인민법원에서 열린 공팜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AP연합뉴스

중국에서 처음으로 비혼 여성의 난자를 동결할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낸 여성이 최근 5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최종 패소했다.

소송은 전향적 판결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고 평가받는다. 소송을 계기로 여성이 자신의 삶을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쉬자오자오(徐棗棗·가명·36)가 소송의 주인공이다.

쉬자오자오는 서른 살이던 지난 2018년 11월 난자동결 시술을 받기 위해 베이징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산부인과를 찾았다. 하얼빈 출신으로 베이징의 한 뉴미디어 회사에 다니던 그는 이 무렵 승진해 팀장이 됐고, 이별을 겪었다. 몇 달 뒤 춘절(중국 설) 연휴 기간 만날 친척들이 “서둘러 결혼하라”고 압박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출산도 직장경력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차에 그는 배우 겸 영화감독 쉬징레이(徐静蕾)가 미국에서 난자동결 시술을 받았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난자동결 시술은 가임기 여성이 난자나 난소 조직 일부를 얼려 향후 임신능력을 보존하는 시술이다.

쉬자오자오는 병원에서 난자가 건강하다고 진단받았지만 “먼저 결혼하라. 그리고 합법적으로 시술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중국 정부는 2003년 ‘인간의 보조 생식 기술에 관한 규정’을 공포해 비혼 여성이 시험관 시술이나 난자 동결 등 임신 관련 시술을 받는 것을 금지했다. 건강 위험과 의료 상업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당국 입장이다. 하지만 난임 부부를 위한 난자동결 시술은 허용한다.

비혼 여성의 경우 진단조차 거부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쉬징레이도 이 때문에 미국에서 시술을 받았으며 중국 내에서는 ‘현행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쉬자오자오는 난자동결 시술을 거부당한 뒤 “난쟁이가 된 기분”을 느끼며 무력해졌다. 그러나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자조모임’에서 지린성이 비혼 여성도 난임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다시 품게 됐다. 자신도 소송을 걸어 제도를 바꿔보기로 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시술을 받는 방법이 있었지만 많은 여성이 그럴 돈이 없다는 점도 소송을 건 이유였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은 장벽이 높기 때문에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베이징차오양인민법원이 소 제기를 수락해 소송이 성립됐다.

2019년 12월, 2021년 9월 두 차례 공판을 거쳐 2022년 7월 1심 판결에서 패소했다. 쉬자오자오는 남성의 정자 동결은 결혼 여부와 별개로 합법이면서 비혼 여성의 난자 동결만 막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병원 측은 난자동결 시술은 여성의 건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늦은 출산이나 비혼 출산이 일반화되면 사회에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엄마의 갱년기와 아이의 사춘기가 만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한부모 가정 자녀는 차별을 받는다”, “비혼 출생이 일반화되면 자녀교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 등이다.

1심 판결이 보도되며 소송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 중국 인구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쉬자오자오는 비혼 출산을 조장한다는 비난과 반발도 맞닥뜨렸다. “시골에서 미혼모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모르느냐”고 비난하거나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못생겨서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는 악플도 접했다. 이 때문에 쉬가 인터넷을 완전히 중단한 적도 있었다.

반면 “당신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고맙다”는 여성들의 메시지도 쏟아졌다. 그는 지난 3월 중공망(中工网) 인터뷰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빨리 남자를 찾지 못하면 앞으로 출산 기회가 없다는 말만 들어서 불안했는데, 난자동결 시술의 존재를 알게 돼 불안이 많이 가라앉았다’는 내용의 온라인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국정자문기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지난 3월 비혼 여성의 난자동결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베이징제3중급인민법원은 지난 7일 1심 법원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조건이 충족되면 쉬자오자오와 관련 의료기관이 해당 분쟁을 별도로 해결할 수 있다”며 향후 중국의 출산 정책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중국은 2심제이기 때문에 이 판결이 최종심이다.

쉬자오자오는 이날 위챗 라이브 방송으로 재판 결과와 소회를 전했다. 그는 “예상된 결과”라면서도 이슈에 관한 토론을 불러일으킨 점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은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바뀌었고 독신 여성에게 점점 더 유리한 방향의 법이 제안되고 있다”며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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