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자발적 탄소배출권, 수요창출 정책에 달렸다
유엔(UN) 기후변화협약, 파리협약에 따라 각 국가들은 2030년과 205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했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화력발전, 제철·금속, 반도체·디스플레이, 정유·석유화학, 시멘트 등 주요 에너지 다소비 업체가 참여하는 '규제적 탄소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규제와 무관하게 민간부문에서 '자발적 탄소감축'에 대한 표준과 검증, 그리고 배출권의 발행·판매와 '자발적 구매'가 이뤄지는 시장이다. 그리고 특정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규제적 탄소배출권과는 달리, 자발적 탄소배출권은 국제적으로 거래·통용된다.
2019년 전후로 파리협약의 국가별 감축목표 달성이 매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국가 감축목표 달성에 활용' 또는 '규제적 탄소시장에서도 자발적 탄소배출권이 통용될 가능성'에 대한 시장 참여자의 기대감이 급증했다. 마침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탄소배출권의 검증과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고, 그래서 2020년부터 2~3년간 자발적 탄소시장 규모가 100% 이상 성장해 많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으로 석유 메이저 기업이나 빅테크 기업이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면서,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배출량을 자발적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는 '친환경 활동'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후 국내 여러 증권사들이 자발적 탄소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을 확대했다.
그런데 일부 기업의 홍보와 제품 광고에 과장이 있었고, 작년 1월 일부 자발적 탄소시장 참여자의 속임수가 해외 언론에 보도됐다. 규제기관이 이런 행위를 '그린워싱(위장 친환경)'으로 규정하면서,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 지난 해부터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국제 기후목표 인증기관이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의한 상쇄에 대해 애매한 의견을 피력해 시장이 더욱 침체됐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을 구축하던 활동도 후폭풍을 맞게 됐다.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도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해 9일 '자발적 탄소시장 협의체'를 발족해 투자자, 감축사업자, 운영기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했다. 하지만 자발적 탄소시장이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내 규제적 탄소시장과 다른 형태의 정책·규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제로에너지빌딩인증제도는 신축건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시설 설치를 지원해 건물의 탄소감축을 유도하는 제도로, 일정규모 이상 및 특정용도의 건물에 인증이 의무화되고 있다. 인증 시 취득세 감면, 주택도시기금 대출한도 상향, 신재생에너지 설치보조금 가점, 기부체납률 경감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그런데 건물에너지효율등급과 연계돼 제로에너지빌딩 인증의 유효기간이 최대 10년인데, 인증기간이 경과하면 인증을 갱신하는 프로세스는 없다. 결과적으로 신축 시 각종 에너지절감 및 신재생 설비 설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 이후 에너지절약 및 탄소배출 감축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높은 성과에 대한 보상과 인센티브는 거의 없다. 따라서 탄소배출 감축 성과가 우수한 건물에 대해서 인증을 갱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탄소배출 감축 성과가 부족한 경우에 공신력있는 국제 및 국내 표준을 따르는 자발적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는 경우에 인증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인증이 갱신된 건물에 대한 재산세 감면과 같은 별도의 인센티브도 있어야 한다.
향후 2030년과 2050년 국가 감축 목표 달성에 해외 배출권의 확보가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마치 1970~1990년대의 자율학습이 순수하게 '자율'이 아니듯이, 자발적 탄소시장도 순수하게 '자발적'이지 않다. 자발적 시장이라 하여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수요를 창출하고, 국내외 탄소감축 사업개발 역량을 키우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yongjin.park@kispric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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