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러시아 본토 공격 첫 인정···러시아는 대테러 작전체제 발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본토 군사작전 개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침공한 남부 지역에 대테러작전을 선포했다. 양국은 6일째 러시아 영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정례 연설에서 “오늘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최전선 상황과 침략자의 영토로 전쟁을 밀어내기 위한 우리의 행동에 대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정의를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침략자에게 필요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일 접경지인 러시아 쿠르스크주로 진격해 교전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이같이 밝혔다. 그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 공격에 관한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양국은 엿새째 쿠르스크주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알렉세이 스미르노프 쿠르스크 주지사 대행은 텔레그램에 11일 새벽 우크라이나가 날린 미사일이 쿠르스크시의 한 아파트에 떨어지면서 13명이 다쳤으며, 이 중 2명은 위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9일에는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양국 국경에서 약 330㎞ 떨어진 남서부 리페츠크주까지 날아가 전력·군 시설을 파괴했고, 인근 주민들이 대피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경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우크라이나군 격퇴 작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는 전날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테러와 마찬가지”라며 쿠르스크·벨고로드·브랸스크주에 대테러 작전체제를 발령했다. 작전 개시 이후 개인과 자동차에 대한 검문, 이동·통신 제한 등 조치를 취했다.
NAC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상황을 불안정하게 하려는 전례 없는 시도를 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테러를 막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집중 공세를 가하는 쿠르스크주에는 각종 에너지 시설이 있어 러시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옮기는 가스관 시설, 러시아 3대 원자력 발전소인 쿠르스크 원전 등이 있다. 러시아 정부는 쿠르스크 원전에서 지난 8일 요격당한 미사일 일부로 추정되는 파편과 잔해가 발견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관련 상황을 보고했다.
이번 교전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본토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최대 공격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지금까지 7만6000명 이상이 쿠르스크 국경지대에서 대피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은 전날 방공 요격기와 로켓 시스템, 다목적 레이더, 대전차 무기 등 1억2500만 달러(약 1707억원) 상당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원한 무기를 러시아 국경 근처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러시아 본토 공격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이기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시점에 이뤄졌다.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주재 서방 외교관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러시아 본토 급습이 대선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제사회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시점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전 이전까지 우크라이나는 (휴전) 협상에 들고나올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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