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검찰 [아침햇발]
이춘재|논설위원
노무현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될 무렵인 2006년 7월 말 조선일보에 ‘계륵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노 대통령이 인기가 너무 없어서 당시 여당(열린우리당)에 ‘쓸모는 없으나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닭갈비(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고 비아냥대는 글이었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금도를 벗어난 일부 언론의 사회적 일탈” “절제력을 잃고 선정적 제목 장사로 대통령과 정부를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행위” 등 청와대 홍보수석의 공개 발언에서 당시 대통령 참모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항상 ‘오버’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한 고위급 참모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고소를 검토해 보라고 민정수석실에 지시했다. 그러자 검찰 출신의 한 참모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고소하면 검찰은 무조건 기소하려고 한다. 사실상 대통령 하명 수사라고 생각할 텐데, 검사가 시시비비를 가릴 엄두를 낼 수 있겠나. 대통령 하명 수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검찰의 생리다. 결국 민심만 더 나빠진다.” 설득력 있는 그의 반론에 고위급 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 대통령도 반대할 게 뻔했다. 국정 운영에 책임감을 느끼는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검찰 고소는 그 자리에서 없던 일이 됐다.
검찰 생리를 너무 잘 아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지금 정반대로 행동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명예훼손 수사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과잉 충성’을 유도한다. 지난 5월 이원석 검찰총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찐윤’ 검사들로 교체했다. 그러자 새 지휘부는 1년 가까이 묵혀뒀던 이 사건을 끄집어내 ‘윤석열 대선 후보 검증 보도’를 한 언론인들을 기소했다. 마치 대통령을 위한 수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과시하듯 사람 목숨까지 불사한 수사였다. 내친김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 ‘출장 조사’까지 했다. 공정과 상식은 내 알 바 아니고, 나를 알아주는 주군에게만 충성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윤 대통령이 원했던 게 바로 이런 자세다. 졸지에 원조 ‘친윤’이었던 전임 지휘부는 무능하고 불충한 검사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전임 지휘부가 수사를 슬슬 한 것도 아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수사 대상 언론인들과 통화한 사람들을 모조리 통신 조회했다. 그 대상이 무려 1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도 문제이지만, 그 방식은 더욱 심각하다. 정치인, 언론인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도 대거 포함됐다.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는 초등학생 딸까지 조회를 당했다. 봉 기자가 단골로 다니던 닭갈비 집 사장과 엘피 바 주인은 검찰이 보낸 ‘통신이용자정보 제공 사실 통지’ 문자를 받고 영문을 몰라 몹시 불안해했다고 한다. 장사가 안돼 폐업 신고를 했는데 거기서 뭐가 잘못된 게 아닌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는 것이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해 놓고도 검찰은 “적법한 수사”만 되뇐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한 검찰” “법불아귀”(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같은 번지르르한 말은 입에 잘도 올린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주요 신문들이 사설이나 칼럼으로 검찰을 비판했다. 검사들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지난 2021년 대선 국면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그랬으니까.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공수처를 “미친 사람들”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공수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135명 대 최소 3천명)의 통신 조회를 한 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민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김은혜 당시 대통령 홍보수석이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를 “희대의 정치공작 사건”이라고 규정하자 곧바로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홍보수석의 말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한 것이다. 정치공작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커녕 단서도 없지만, 일단 대통령의 장단에 맞추고 보는 게 이들에겐 중요하다. 이렇듯 검찰 수뇌부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무고한 시민들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세상이 됐다.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보는 검찰은 그래서 위험하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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