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건 넘게 사고 터지는 상조계약 해외 사례 살펴보니...건전성 이슈로 규정해 그레이존 명확히 관리감독

이승연 2024. 8. 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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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상조계약 비금융→금융 재분류
FSCS가 8.5만 파운드 한도로 보상
전문가 "산업 간 허들 낮아지는데
명확한 관리·감독 주체 확정해야"
검찰이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야기한 티몬·위메프 본사 등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지난 1일 오후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담을 상자를 들고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전문가들은 금융과 산업 간 그레이존(gray zone·중간지대)인 그림자금융 영역에 대한 명확한 책임 주체 설정과 건전성 규제 등이 시급한 때라고 조언한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blur)'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이 같은 비금융 회사의 유사 금융 역할이 앞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상조 시장이 커지면서 영국은 지난 2021년 이를 비금융에서 금융으로 재범주화했다. 자율규제 한계가 대두되고 소비자 피해가 높아지며 이를 더 강하게 규제할 장치가 필요해지면서였다. 시장 변화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부처 간 재논의 및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상조 계약은 비금융 아니라 금융" 재규정한 英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에서도 그림자금융의 관리·감독 책임 문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당초 비금융으로 취급되던 상조 계약에 대해 지난 2021년부터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FSMA)으로 규율하기 시작한 영국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조 계약은 거액의 선불금을 지불하지만 이에 대한 계약자 보호 장치는 흩어져 있는 대표적인 그레이존이다.

영국은 상조 계약을 사망을 전제로 하는 생명보험 또는 신탁과 연계된 '금융상품'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계약자가 사전에 일시금이나 월 납부 방식으로 대금을 선납하고, 상조 계약 제공자가 이 예수금을 신탁 또는 생명보험 계약과 연계 운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상조 계약을 금융행위감독청(FCA) 규제에서 제외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의 변화다. FSMA 제정 당시까지만 해도 상조 계약 가입자는 전체 인구 2% 상당으로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자율규제기구인 영국상조협회(FPA)가 수행하는 소비자민원 처리·분쟁조정 등 기능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시장이 급성장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2006년~2017년 기간 동안 평균 연매출 증가율이 200%도 넘어서게 됐다. 이에 지난 2021년 규제 예외 조항을 삭제하며 금융서비스보상기구(FSCS) 보호 대상으로 상조 계약을 편입시킨 것이다.

이제 상조 계약 제공자의 파산으로 계약 불이행·불완전판매 등이 일어났을 경우 FSCS가 8만5000파운드(1억5000만원) 한도로 보상해 준다. 금융옴부즈만서비스(FOS)를 통해 위법 행위에 따른 금융계약자 피해 분쟁 조정도 제도화했다. 지난 2022년 말 기준 상조 계약 시장 규모는 약 28억 파운드(4조9000억원)로 가입자수도 160만명에 달한다. 2021년말 65개사였던 상조 제조사는 FCA 규제 이후인 2022년 말 26개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영국은 상조 계약을 금융 상품으로 인식하는 반면 한국은 비금융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며 "향후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 생보 시장 포화에 따라 보험사 진입 등이 허용돼 상조 계약이 금융상품으로 포섭될 경우 영국과 유사한 보호 체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문가 "공백 확대되는데 감독 주체 명확히 해야"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전문가들은 그림자금융을 금융에 편입시켜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관리·감독 주체에 대한 명확한 분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대해서는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신용 창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림자금융도 넓게 보면 금융"이라며 "디지털 금융이 발달하면서 금융과 산업 경계가 모호한 그레이존이 늘어나고 있는데 어디에서 관리·감독할 것인지 정리가 필요한 단계"라고 조언했다. 그는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라서 규제 비용이 높다"며 "누구 책임이냐에 따라서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공정거래 이슈로 거론해 최소한 규제로 접근할 것이냐 아니면 건전성 이슈를 포함해 세게 갈 것이냐에 대해 정부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에서 그림자금융 규모는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선불식 상조업체와 적립식 여행상품 판매업체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가입자 및 선수금은 전년 대비 각각 증가해 올 3월 892만명, 9조448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833만명, 8조3890억원) 대비 각각 7.1%, 12.6% 늘었다.

구체적으로 선불식 상조상품 가입자수가 863만8000명, 선수금 규모 9조4067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적립식 여행상품 가입자 수는 28만5000명, 선수금 규모 419억원이었다. 선불식 할부거래업 외에도 티메프 사태로 문제시된 PG사나 리스회사, 상품권 판매 업체, 운동시설과 피부·헤어·네일 등 미용관리업소까지 포함하면 그림자금융 규모는 더 커지게 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그림자금융 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전자금융업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구제 제도가 규제 공백이다. 소비자원은 책임 자산을 확보해 신속히 구제하는 방법이 미흡하다"며 "대형 전자금융업자에 대해서는 분쟁이 발생하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담당하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상거래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은 눈에 보이지 않고 계약 내용도 복잡하기 때문에 규제 비용이 많이 든다"며 "금융의 시각에서 상거래를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seung@fnnews.com 이승연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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