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국장 A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고인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처리 과정을 두고 윗선과 갈등을 빚고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지자, 야권은 ‘김건희 특검법’ 추진의 고삐를 당기는 모양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고인의 죽음을 정쟁 수단으로 삼는다며 청문회 등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의 주문식 면죄부에 괴로웠던 이가 세상을 떠났는데 정작 당사자는 애도도 공감도 없다”며 “그런 박절함이야말로 권력의 맛”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상을 떠난 국민권익위 고위 간부는 삶의 보람과 명예를 국민권익 향상에서 찾던 분”이라며 “대통령 부부는 권익위 간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권익위 국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지난 9일 “상임위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고, 10일엔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 시켜 모든 의혹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도 ‘김건희 종합특검’을 출범시켜야 한다며 공세에 동참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으로 바꾼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는 전날 취재진에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을 텐데 외부의 힘에 꺾여 생존 자체가 어려워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강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 뒤 취재진과 만나 권익위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라는 점과 관련해 “정무위는 상임위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운영위원회 현안 질의를 통한 청문회를 고민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경우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실 등을 대상으로 한 현안 질의가 가능하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건 진상규명, 망인의 명예회복, 남은 가족에 대한 돌봄과 보상 문제”라며 “청문회든 특검이든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상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민주당이 사건을 정쟁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여당 측 주장에 대해 “공무원은 국민이 아닌가. 채 상병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민생과 관련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고인의 죽음을 정쟁 수단으로 삼는다며 관련 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 의원은 지난달 24일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청문회 안건 상정 요구를 거부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은 이날 기자에게 보낸 문자에서 야당의 추가 청문회 요구에 대해서도 “청문회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박준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 운영위 현안질의 방식에 대해서도 “죽음을 정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논평에서는 “이재명 전 대표는 주변에서 일어난 수많은 의문의 죽음 앞에서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관했다”며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나와 관계가 없다’는 말로 사자를 모독했고 유족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0일 논평에서는 A씨가 이 전 대표의 헬기 이송 사건도 담당하던 것을 거론하며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장에서 민주당 인사들은 고인을 증언대로 불러 고압적 자세로 압박하며 심적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A씨는 민주당으로부터 “대통령실의 청탁금지 업무 담당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번 사건 조사와 관련된 부분이라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여당 내에서도 권익위의 명품백 수수 의혹 종결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사건의 조사 책임자인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의 죽음을 접하며 지금 이 나라가 과연 정상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디올백 사건을 종결 처리한 권익위의 모든 결정 과정부터 조사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권익위 부패방지국 국장 직무대리였던 A씨는 지난 8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최근까지 부패방지국에서 청렴 정책과 청렴 조사 평가 등을 총괄해왔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과 이 전 대표의 응급 헬기 이용 사건 등과 관련한 조사를 지휘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