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집사 "교회에서 시작한 드럼, 선한 영향력 주고파"

김영미PD 2024. 8.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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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드림교회 이재준 집사
드러머로의 삶,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영어교육도시에서 학원 강사로, 연주자로 활동
시험관 시술 끝에 얻은 아들, 가족이 행복한 제주, 감사해
로드인터뷰_사람꽃
■ 방송 : CBS 라디오 <로드인터뷰_사람꽃>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4년 8월 3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제주드림교회 이재준 집사(네이든 드럼 스튜디오 원장)
본인 제공

삶이 아름다운 크리스천을 만나는 시간, 로드인터뷰 사람꽃. 오늘은 드럼연주자인 제주드림교회 이재준 집사를 제주CBS 김영미 PD가 만나봅니다.

◇김영미>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이재준> 저는 모태 신앙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목사님인 큰아버님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도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요.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여름성경학교 때 달란트를 받아서 무언가를 살 수 있었던 게 너무 좋아서 꾸준히 다니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고등학교 수련회 때였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라 분명 많이 부끄러웠을 텐데, 남들 앞에서 울면서 찬양하고 기도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김영미> 드럼 연주도 교회에서 처음 시작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재준> 고등부에 막 올라가니까 주보에 '드럼 반주자 구인'이라는 광고가 떡 하니 보이는 거예요. 사실 제가 그렇게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격동의 70년대 생입니다. 그때는 실용음악 악기, 특히 드럼이라는 악기를 배우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가르쳐 주는 학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딱히 접할 기회도 없었고 크게 관심도 없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뭔가 참여하고, 앞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지원서를 내게 됐습니다. 다음날 지원서 낸 사람들 다 모이라고 해서 가 봤더니 서 너명 정도의 친구들이 오디션을 보려고 왔더라고요.

그 당시 먼저 교회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던 선배가 리듬을 하나 예로 들면서 다음 주까지 가장 비슷하게 연주해 오는 친구를 뽑겠다고 했습니다. 한 주간 어찌어찌 기억나는 대로 연습해 봤는데 그나마 제가 가장 비슷하게 연주했는지 뽑히게 됐고, 드럼 반주자로 지금까지 계속 사역하게 됐습니다.

◇김영미> 교회에서 드럼 스틱을 잡아보고 드럼 연주자의 꿈을 꾸게 된 건가요.

◆이재준> 교회에서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아니고요. 교회 찬양팀에서 사역을 하다가 고등학교 때는 록밴드에 참여를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음악과는 상관없는 건축학과에 진학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교에서도 학교 밴드에 들어가고 드럼을 연주하다 보니 전공인 건축보다는 드럼 연주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자퇴를 결정하고 드럼을 배우러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찰 군악대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게 됐는데요. 그분에게 경찰 교향악단의 얘기를 듣고 도전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떨어졌고 서울의 재즈아카데미라는 기관에서 6개월 드럼을 배워 다시 도전해 합격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연주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 되기까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고, 일정치 않은 수입으로 결혼도 순탄하지 않았거든요. 아내가 다섯 자매이고, 장인, 장모님 포함 모두 일곱 분 중에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뉴욕에서 열린 리사이틀 공연 당시 모습. 이재준 집사 제공

 
◇김영미> 군을 제대하고 유명가수들하고 무대에서 세션으로 활동도 했지만 돌연 미국으로 간 걸로 압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재준> 2010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고요. 사실 결혼만 하면 아이가 바로 생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내가 두 번의 유산을 하게 됐고 더 이상 자연적으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서 정말 힘들 때였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여전히 연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아내가 '이왕 대중음악, 재즈 음악을 시작했으면 그래도 본고장인 미국에 가서 배우고 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처음 드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에 가서 유명한 연주자들한테 음악을 배우고 그 큰 나라에서 활동도 해보자는 꿈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꿈도 희미해져 가고 잊고 살았더라고요.

아내의 말에 다시 꿈이 살아나서 1년여 정도 준비 끝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고 공부만 하고 귀국할 줄 알았던 유학 생활이 7년여간 이어지면서 이민 생활로 바뀌게 됐습니다.

◇김영미> 그럼 언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까.

◆이재준> 6년 전인 2018년 가을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영주권도 받고 자리 잡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둘 다 마음 한편에 아이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더라고요.

하지만 미국의 시험관 시술 비용은 너무 비싸고 확률도 낮다고 해서 한국으로의 귀국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김영미>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이재준> 한국으로 오기 전에 두 달 정도 동쪽에 있는 뉴욕에서부터 서쪽 끝인 캘리포니아까지 차로 대륙 횡단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저희 부부가 살아가는데 많은 힘이 되고 추억이 되는 잊지 못할 여행이었는데요.

중간 지점인 텍사스에 제 아내 첫째 언니 가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몇 주간 함께 지내게 됐는데요. 처형이 미국 오시기 전에 2년 정도 제주에 머물면서 첫째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냈는데, 그곳 아이들이 드럼을 배울 곳이 없어서 제주시까지 가더라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귀국해서 군악대 시절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제주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전문가인 친구가 같은 얘기를 해줘서 제주에 오게 됐습니다.

◇김영미> 제주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이재준> 현재는 영어교육도시에서 '네이든 드럼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국제학교 아이들에게 드럼을 가르쳐 주고 있고요. 뮤지컬 연주와 재즈 연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귀포시 동광에 위치한 제주드림교회에 출석해서 찬양팀 반주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음악적 달란트를 가진 분들이 많아서 많은 것들을 해 왔고 또 준비 중에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 사진. 이재준 집사 제공

 
◇김영미> 제주에서  행복했던 일이 있다면.

◆이재준> 정말 많은 것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한 가지를 고르라면 결혼 12년 만에 아이를 가지고 어느새 3살이 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매일매일 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김영미> 교회에서 몽골선교를 가는데, 어떤 마음인가요.

◆이재준> 저는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으로 떠나는 선교인데요. 사실 처음이라 두려움도 많았고 3살 된 아이와 아내를 두고 1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몽골 선교를 통해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처음 만난 하나님을 다시 제대로 만나보고 싶고,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기만 하고 감사하며 살지 못한 저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자 결정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함께 선교에 참여하는 장로님께서 '선교는 대나무의 매듭 같더라, 대나무가 높이 자라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매듭을 짓고 다시 자라듯이 우리의 신앙에도 매듭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도 이번 선교가 저의 신앙의 매듭이 되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영미> 제주에서 어떤 삶을 꿈꾸고 있습니까.

◆이재준>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동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맞은 여러 교회들이 연합해서 청년들을 모이게 하고 함께 예배하며 기도 하는 'house of worship' 이란 예배팀에서 찬양으로 섬겼어요.

근데 제주에 와서 보니 미국처럼 청년들이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공동체가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런 공동체에서 함께 사역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또한 저희 가정에, 저에게 드럼을 배우는 모든 학생들에게, 그리고 제가 속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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