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데”…‘스마일 점퍼’ 우상혁의 눈물[파리올림픽]
2m31, 2차 시기에 실패한 우상혁(28·용인시청)은 걷고 또 걸었다. 연신 머리를 두들기며 앞선 두 번의 실패를 복기했다. 지난 3년간 준비한 올림픽이 너무 빨리 끝날 위기였다. 우상혁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시도한 3차 시기에서도 바를 건드려 떨어트렸다. 매트에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던 우상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내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뒤 애써 미소지으며 자신을 응원해준 관중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2m31은 우상혁의 개인 최고 기록(2m36)보다 5cm 낮은 기록이다. 올해 최고 기록인 2m33에도 못 미치는 높이다. 예선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였기에 결과가 더 아쉽게 다가왔다. 3년 전 도쿄에서 2m35를 넘어 4위를 했던 우상혁은 1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육상 높이뛰기 남자 결선에서 2m27로 12명 중 7에 올랐다. 이번 대회 우승자는 2m36을 넘은 해미시 커(뉴질랜드)였다.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우상혁은 “오늘같이 점프가 좋지 않은 날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좋은 점프를 해야 한다”며 “아직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결과를 만들지 못해 아쉽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우상혁은 도쿄 대회를 통해 ‘스마일 점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경쟁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날 탈락을 확정한 뒤에도 웃음으로 아쉬움을 털어냈던 우상혁도 무대 뒤에선 눈물을 쏟았다. 지난 3년간 동고동락한 김도균 용인시청 감독(국가대표 코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우상혁은 “지난 3년간 많은 국제대회를 치렀다. 가정이 있는 감독님은 저보다 더 힘드셨을 것”이라며 “3차 시기 바에 걸린 뒤 감독님을 봤는데 ‘괜찮다,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다. 제일 속상하고, 저를 안타까워할 마음을 알기에, 빨리 만나서 안아드리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상혁은 김 감독과 만난 뒤 세계적인 레벨의 높이뛰기 선수로 성장했다. 도쿄 올림픽 4위, 2022년 세계실내선수권 우승(2m34), 2023년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2m35) 등 영광의 순간엔 늘 김 감독이 함께였다. 지난 시간을 떠올린 우상혁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저는 그냥 경기를 뛰기만 하면 되는데 감독님은 여러 가지 상황을 다 지켜봐야 한다”며 “저는 몸만 힘들 뿐이지 감독님은 감정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모든 것이 힘드셨을 것”이라고 미안해했다.
눈물을 닦아낸 우상혁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희망을 얻는 시합과 자극이 되는 시합이 있다. 도쿄 땐 희망을 봤고, 이번엔 동기부여를 얻었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매 시즌 꾸역꾸역 준비해 LA까지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당장 내년엔 도쿄에서 세계육상선수권이 열린다. 우상혁은 “이 마음 그대로 초심 잃지 않겠다”며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 또 기대할 수 있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에서 여정은 아쉽게 끝났지만, 우상혁은 여전히 한국 육상의 희망이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육상 선수는 우상혁 포함 단 세 명 뿐이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종목 사상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 결선에 오른 그를 보며 꿈을 키우는 선수들이 있다. 이번 올림픽 세단뛰기 예선에서 떨어진 김장우는 “(우)상혁이 형이 보여줬듯 한국 육상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저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상혁은 자신처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감 속에 지내다 보면 욕심도 생기고, 기회가 찾아온다”며 “계속 두들기면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까지 뛸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응원했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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