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성인문학·장르 경계 지우고 ②영어덜트 서사 개척...청소년 소설, 왜 안 봐요?
장르와 세대 넘는 청소년 문학 시리즈 내
영어덜트 시장 개척하려는 잰걸음도 눈길
외계 로봇이 점령한 경기 안양시에서 도망자의 신세가 된 고등학생(‘자코메티’·듀나), 온라인 게임에서 사귄 지구인 친구를 만나러 온 외계인(‘선물은 비밀’·이유리),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회귀한 30대 직장인(‘셰이커’·이희영), 등교를 거부한 동급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그룹의 팬이란 사실을 알게 된 반장(‘퍼플젤리의 유통기한’·박서련)까지.
최근 문학동네, 위즈덤하우스, 래빗홀, 자음과모음 등의 출판사에서 잇따라 내놓은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주인공들이다. 새로 선보인 청소년 소설 시리즈는 공상과학(SF)과 로맨스, 호러 등 장르는 물론 청소년과 성인 문학의 경계까지 무너뜨렸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릴 ‘모범적이고 교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벗고 독자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장르와 손잡고 '지금 여기'를 비춘다
청소년 소설이 장르문학의 형식으로 쓰이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장르문학을 표방한 시리즈가 앞다퉈 나오는 현상은 눈길을 끈다. 장르문학과 손을 잡은 청소년 문학 시리즈 ‘문학동네청소년ex-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은 순혈 인류로부터 차별받는 파충류형 외계인 렙틸리언 등 SF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통해 표준과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고, 이로써 현실의 차별과 혐오를 비춘다.
왜 장르문학일까. 이 책을 엮은 송수연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보지 못한, 그래서 알지 못하는 세계와 타자의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것(SF),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여긴 대상의 낯선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호러), 여성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로맨스), 그리하여 변방과 중앙의 격차와 경계를 무화하는 것이 장르문학이 해온 일이니까요.”
래빗홀도 올해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청소년 소설 시리즈 래빗홀YA를 선보였다. 이희영 작가의 ‘셰이커’에 이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이달 출간될 김청귤 작가의 ‘달리는 강하다’는 봉쇄된 좀비 도시를 배경으로 약자들의 연대와 노인 문제, 대안적 가족공동체 등을 다뤘다. 래빗홀 측은 “교훈을 강조하기보다는 재미와 감동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고 전했다.
성인 문학 작가가 쓴 청소년 문학은
최근 청소년 문학 시리즈는 김청귤 작가를 비롯해 성인 문학을 주로 쓰던 작가들이 필진으로 나섰다는 공통점도 있다. 청소년 문학 작가와 성인 문학 작가가 한 주제에 함께 참여하는 구성을 택한 자음과모음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계절 앤솔러지’가 대표적이다. 자음과모음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들은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무엇보다 눈높이를 맞추려 애쓴다고 한다. 위즈덤하우스 티쇼츠 시리즈의 첫 책 ‘퍼플젤리의 유통 기한’을 첫 쓴 박서련 작가는 “청소년들이 ‘낡지 않았다’라는 느낌으로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인 ‘여름 싫어. 개 싫다 진짜’를 두고도 “유행어가 아닌 오래 쓰일 말을 쓰려고 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티쇼츠 시리즈는 올해 가을 조예은 작가의 청소년 소설을 발표한다. 조 작가는 “최대한 어른들의 시야는 배제하고 청소년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말했다.
정답은 ‘영어덜트’에 있다?
청소년 소설을 둘러싼 문학계의 다양한 시도는 독서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독자를 늘리는 것에 더해 성인까지 독자층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20대 이상의 성인까지 겨냥한 ‘영어덜트 소설’을 띄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영미권 문학계에서는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 등의 영어덜트 소설이 하나의 분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에서도 각각 80만 부와 50만 부 안팎이 판매된 ‘완득이’와 ‘위저드 베이커리’ ‘페인트’ 등이 청소년와 20대 독자에게 널리 읽히며 ‘한국형 영어덜트’의 가능성을 열었다. 해당 소설을 펴낸 출판사 창비는 2020년부터 ‘영어덜트 소설상’을 만들어 카카오페이지와 공동 주최하고, 영어덜트 소설 시리즈인 소설Y를 낸다.
창비는 “영어덜트 소설은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 주는 명칭”이라고 전했다. 또 “해외 시장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문학의 글로벌화 전략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영어덜트소설상 1회 수상작 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은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11개국에 번역돼 수출됐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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