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까무라'와 '가인(街人)의 후예'

전북CBS 이균형 기자 2024. 8. 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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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칼럼-'突直口']
전북 CBS 이균형 보도국장

개그코너 '괜찮아유~'의 아련한 추억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매주 토요일 오후면 만사 제쳐두고 필자를 TV 앞으로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으니 바로 '괜찮아유~'라는 개그 프로그램 코너였다. 최양락과 김학래는 시시콜콜한 일로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골탕먹이지 못해 안달인 충청도 한 마을의 이웃지간이다. 촌동네지만 그래도 살림살이가 상대적으로 나은 김학래의 자랑질에 심사가 뒤틀린 최양락은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일제시대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들 힘들었잖유~ 그래도 형님네 할아버지는 일본 순사 나까무라하고 친하게 지내서 잘먹고 잘살았잖유~"그러면 김학래는 큰 눈에 흰자위를 가득 채운 채 "하지마!"라며 냅다 고함을 지른다. 이에 최양락은 "알았어유, 안할게유, 그런데 나까무라하고는 어떻게해서 가까워졌대유~"하며 집요하게 물어 뜯었고 이에 결국 폭발한 김학래는 "그만하라고 혔잖여!"하며 최양락의 귀싸대기를 후려 패기도 한다. 그때서야 최양락은 "미안해유, 이제 안할게유, 그런데 야마모도하고는 또 워떤 사이래유?"라며 끝까지 김학래 갈구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마시던 음료수까지 품어대며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개그 코너 '괜찮아유~'가 던져준 것은 단순한 웃음만이 아닌, 시골 사람 조차도 '나까무라'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조그마한 친일 행적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았나 싶다.

"이의있으면 항소하시오!"


1888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가인(街人) 김병로.

그는 구한말에 의병 활동을 시작으로 변호사 시절에는 항일운동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았고, 일제 치하에서 창씨개명을 거부했음은 물론, 일제의 배급도 일체 거절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강직한 성품의 김병로를 부담스러워해 그가 대법원장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대법원장은 김병로밖에 없다"고 하자 마지못해 김병로를 임명했다.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재판부 재판장을 맡았던 김병로는 친일파를 싸고 도는 이승만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반민특위 습격사건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에서는 추호도 용서없이 법대로 판단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눈엣가시 같은 김병로와 사법부를 겨냥해 국회연설에서 "우리나라 법관들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리를 행사한다"며 질타하자 김병로는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며 맞짱을 떴다. 대법원장 임명권자이자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대통령에게 거침없는 돌직구를 던진 것이다. 필자에겐 그런 가인(街人)의 후예임이 더욱 자랑스럽게 다가서는 대목이다. 물론 공감 여부는 독자들의 몫일터이고…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은 수출? 그렇다면 이완용은 거상(巨商)인가?


가인(街人)이 떠난 지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는 또다시 친일과 밀정 논란이 한창이다. 광복은 1945년이 아닌, 1948년 8월 15일이라며 애써 일제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대한민국 독립기념관장. 아니나 다를까 그는 취임 당일부터 친일파 명예회복을 선언하며 친일 인명사전부터 손보겠다고 옷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뿐인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은 가격을 받고 팔았으니 수탈이 아닌 수출"이라는 독립기념관 이사라는 분의 워딩은 필자의 분노게이지를 상한가로 끌어올리며 머리 위로 그을음까지 피워냈다. 그 이사님 말대로라면 사도광산 등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을 당했던 조선인들과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조선의 아낙네들이 푼돈이라도 받았다면 일본을 괴롭히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당장 멈추게 하고 대한민국의 수출 역군으로 대접해야 한단 말인가? 한걸음 더 나가보자. 돈을 받고 나라를 팔아먹으려던 이완용은 매국노가 아닌 국제적 거상(巨商)으로 재평가돼야 하나? 그들 조상 중에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배 위에서 생을 마감한 우키시마호 희생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과연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60여 년전 세상을 떠난 가인 김병로 선생께서 만약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떤 추상같은 말을 던지실까? 아마도 고결한 법조용어보다는 육두문자가 앞서지 않을까 싶다.

"조선의 독립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것이 죄입니까? 피고인들이 마음에 독립을 품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처벌하려면 2천만 조선인 전체를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던 일체치하 김병로 변호사의 거침없고 단호한 변론은 지금도 강렬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

개그 코너 '괜찮아유~'의 시골마을 농부조차도 '나까무라'라는 소리를 죽기보다 싫어하는데 왜 오늘날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롯해 일본과 친하지 못해 안달일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인(街人)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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