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 불참 결정…창립 이후 처음
백범김구기념관서 별도 행사 개최
대통령 초청 영빈관 행사도 보이콧
이종찬은 “용산 회유 왔으나 거절”
광복회가 오는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정부가 ‘뉴라이트 계열’로 지목된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하는 등 일련의 움직임을 ‘건국절’ 제정의 포석으로 판단하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광복회가 1965년 창립 이후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광복회는 11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15일 오전 10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37개 단체로 구성된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자체적으로 거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기념식에서는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이 ‘1948년 건국과 식민지배 합법화’를 주제로 강연도 할 예정이다. 광복회는 기념식 이후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일제 강점이 불법적이었고 그래서 무효였음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임을 확인해 달라”는 질의서도 보낼 계획이다.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도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서 별도로 광복절 행사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광복회는 “정부가 1948년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는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전날 광복회학술원이 운영하는 청년헤리티지 아카데미 강연에서 “용산(대통령실)과 보훈부에서 행사에 참석하라는 회유가 왔으나 거절했다”라며 정부의 광복절 경축 기념식은 물론 대통령 초청 영빈관 행사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대통령실 측이 ‘어떻게 해야 나오시느냐’로 묻자 “용산에서 대변인을 시켜 건국절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다. 우리 정부 하에서는 건국절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야 나도 우리 회원들에게 ‘건국절 안 한다고 하니까 (광복절 행사에) 가자’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광복절 행사 불참은 이 회장 개인 의사가 아니라 광복회 소속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뜻이라고 광복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광복회는 그간 행보에 비춰 정부가 건국절 제정을 추진할 것으로 의심한다. 정부는 지난 6일 뉴라이트 계열로 지목된 김형석 고신대 석좌교수를 독립기념관장에 앉혔다. 광복회는 김 관장을 두고 “이승만 대통령을 우파, 김구 주석을 좌파로 갈라치기 하거나 임시정부 역사를 평가절하하며 대한민국은 1919년 임시정부로 건국된 게 아니라 1948년에 건국됐다고 주장해왔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앞서 독립기념관 이사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 곳곳에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발탁되기도 했다.
광복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밝힌 점도 주목하고 있다. 광복회는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이승만의 건국을 위한 준비운동’으로 정의했다”라며 “선열들의 해방 전 독립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한편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고 비판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대통령의 이런 설정이 잘못된 것이며, 1948년 건국절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는 게 이번 항의의 핵심”이라고 했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정부가 건국절을 제정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광복회는 지난 9일에도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실이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건국절 제정 추진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광복절 경축식 참석도 무의미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관장은 지난 8일 취임식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뉴라이트라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면서 “왜 사퇴하라고 하는지 모르겠고, 사퇴할 이유나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광복회 측은 “일제강점기 때 밀정이 자신이 밀정이라고 밝히고 다녔느냐”라며 “뉴라이트도 자신을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김 관장은 12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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