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성장 신유빈, 4년 후가 기다려지는 이유
“멘털 좋아져, 포핸드 공격 등 기술만 좀 더 보완하면 돼”
(시사저널=김경무 스포츠 칼럼니스트)
"밥보다 친구보다 탁구가 좋아~" 만 5세 때부터 '탁구 신동'으로 불리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신유빈(20). 그 앳되고 어린 꼬마가 당시 강호동이 진행하는 《스타킹》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이 말은 지금 다시 SNS를 통해 생생히 재연되고 있다. 그때 방송에 한국 탁구 레전드 현정화 감독도 출연해 5세 신유빈과 공을 치며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는 선수로 자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으니, 어릴 적부터 그의 스타성은 넘쳐난 셈이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24 파리올림픽 무대. 여자 단식 세계랭킹 8위, 한국 여자 탁구 대표팀 에이스로 성장한 신유빈은 임종훈(27)과 황금콤비를 이뤄 혼합복식 동메달 쾌거를 이뤄내더니, 여자 단식에서는 3년 전 2020 도쿄올림픽 때부터 훨씬 나은 성적인 4위에 올라 한국 여자 탁구의 위상을 높였다. 10일(한국시간) 열린 탁구 마지막 경기 여자 단체전에서는 독일을 3대0으로 완파하고 두번째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멘털이 좋아졌어요. 과거에는 불안하면 기술까지 흔들렸는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많이 침착해지고 근성까지 좋아졌습니다." 파리 현지에서 올림픽 탁구 종목 현지 중계 해설을 맡았던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은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 신유빈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4년 후 올림픽 첫 여자 단식 결승 진출 기대
실제 신유빈은 8월1일 열린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세계 13위 일본의 히라노 미우(24)를 맞아 풀세트 혈전 끝에 게임 스코어 4대3으로 짜릿한 승리를 일궈내며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3게임을 내리 따내고도 상대의 거센 반격에 멘털이 다소 흔들리며 3대3 동점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마지막 7세트에서 듀스까지 가는 숨막히는 승부 끝에 강한 정신력으로 4강 진출이라는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마지막 세트 9-10으로 몰리며 히라노에게 한 점만 더 내주면 지는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는 극적으로 10-10을 만든 후, 끝내 2점 차로 승부를 다시 뒤집고 포효했다. 두 차례 매치포인트 위기를 벗어난 정신력이 무엇보다 빛났다.
그리고 아쉬운 4강전 패배 후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계 5위인 일본의 에이스 하야타 히나(24)를 맞아 선전했으나 2대4로 석패하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하야타는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4강전 1단식 때도 신유빈에게 0대3 패배를 안긴 강호다.
3년 전 도쿄올림픽 때 만 17세로 올림픽 무대에 처음 출전한 신유빈. 그는 중국계이지만 룩셈부르크 대표팀 멤버로 출전한 58세 노장 니샤렌과의 여자 단식 2라운드(64강전) 대결로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무려 1시간32분44초 동안 접전이 이어졌고, 신유빈은 게임 스코어 4대3으로 진땀승을 거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을 맞아 10대 어린 선수가 만들어낸 명승부는 전 세계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어진 3라운드(32강전)에서 홍콩의 베테랑 두호이켐(당시 세계 15위)에게 게임 스코어 2대4로 져 조기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신유빈은 도쿄올림픽 이후 지난 3년 동안 칼을 갈며 꾸준히 실력을 가다듬더니, 여자 복식 세계 1위 등극,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금메달 등 업적을 세웠다. 오른 손목 골절로 인한 1년간의 공백도 극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올림픽 무대. 신유빈은 한층 더 성장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부동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고, 4년 후인 2028 LA올림픽 무대에서의 개인전 메달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시켜줬다.
신유빈이 임종훈과 짝을 이뤄 홍콩의 웡춘팅-두호이켐 조에 혼합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게임 스코어 4대0 완승을 거두고 올림픽 첫 메달의 감격을 맛본 것은 무엇보다 의미가 크다. 한국 탁구로서는 12년 만의 값진 올림픽 메달이었다. 아쉽게도 현정화(1992년 동메달), 김경아(2004년 동메달) 이후 끊긴 여자 단식 메달을 4년 후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선배를 넘어 최초 결승 진출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신유빈은 몇 가지 숙제도 해결해야 한다.
세계 4위 천멍(중국)과의 이번 여자 단식 4강전에서는 신유빈의 한계를 확연히 드러냈다. 천멍에게 때때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게임 스코어 0대4 완패였다. 그나마 자신의 주특기인 백핸드 연결력으로 버티며 히라노에게는 이겼지만, 세계 최강 천멍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천멍은 공의 회전력이 한층 높은 구질로 신유빈의 리시브 실수를 자주 유도해 냈다.
신유빈은 좌우 움직임과 푸트워크도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해, 이 부분도 가다듬어야 한다. 탁구 지도자나 전문가들은 신유빈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약점인 포핸드 공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천멍이나 하야타가 한 번씩 움찔할 만큼 서브가 개선된 점은 고무적이다.
유남규 감독은 신유빈에 대해 "기술력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 실수가 줄었다. 연습량이 많았고, 남자 파트너가 꾸준히 연습 상대를 해줬기 때문"이라며 "4년 후 단식 메달을 따려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필요한 부분은 모두 갖췄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백핸드 쪽은 좋으나 포핸드 공격이 약해 상대한테 자극을 주지 못하고 반격을 당했다. 순발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좌우 움직임과 푸트워크 등 순발력 높여야
신유빈의 실업팀 입단 초기에 그를 한동안 지도했던 강문수 전 대한항공 감독은 "2004 아테네올림픽 때 중국의 왕하오를 물리치고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딴 유승민은 원모어(one more) 정신으로 훈련했고 한국 탁구에 금자탑을 쌓았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이라는 말이 있다. 신유빈이 이런 정신으로 앞으로 훈련에 매진해야 올림픽에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4년 후에도 신유빈은 이번에 넘지 못한 강호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다.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천멍은 현재 30대라 나오기 어렵겠지만, 세계 최강 중국은 이번에 은메달을 딴 세계랭킹 1위 쑨잉샤(23)를 비롯해 3위 왕만위(25), 4위 왕이디(27) 등이 건재하다. 일본은 하야타와 히라노 외에도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 8위 하리모토 미와(16)가 4년 후 위협적인 상대로 떠오를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신유빈 말고는 아직 기대주가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번에 파리에 직접 와서 언니 신유빈을 지켜본 후배 김나영(19·세계 39위)이나 귀화선수 연한을 채워 곧 국가대표에 도전할 주천희(22·세계 23위) 등 신유빈 또래 라이벌들의 성장세는 지켜볼 만하다.
신유빈은 이번 올림픽에서 개인전을 마친 후 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하야타 선수가 저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다. 그런 실력과 체력과 정신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저도 배우고 더 도전하겠다"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아쉬울지 몰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해서 후련했던 것 같다"고 했다. 확실히 3년 전 도쿄 때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성장한 신유빈의 모습이었다. 과연 4년 후 LA에서는 또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감을 부풀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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