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대부분, ‘과충전’ 방지 못하는 완속충전기

세종=박소정 기자 2024. 8. 1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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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등 공동주택 설치 98.3%는 ‘완속충전기’
급속충전기에 비해 車 충전 상태 연동 등 어려워
배터리 제어·제조사 공개·지하 설치… 과제 산적
관계부처, 9월 초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 발표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대부분이 ‘과충전’을 자체적으로 막을 수 없는 완속충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충전기에 비해 완속충전기는 배터리 충전 상태 정보를 연동받을 수 없으므로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의식 등을 바탕으로 다음 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24만5435개 중 완속 충전기는 98.3%(24만1349개)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한 건물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소에 게시된 충전 주의사항 안내문. /뉴스1

근린생활시설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5807개 중에서도 70.5%(4093개)가 완속충전기로 나타났다. 교육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에도 완속충전기 비율이 각각 80.6%, 71%에 달했다.

완속충전기는 급속충전기와 비교해 과충전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급속충전기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장착돼 전기차 배터리 충전 상태 정보(SoC)를 차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건네받아 충전기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지만, 완속충전기는 거의 PLC 모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환경부가 올해부터 PLC 모뎀을 단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에 모뎀 가격에 상응하는 40만원을 추가 지원하는 등 일부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는 완속충전기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의 한 정비소에서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소된 전기차가 2차 합동감식을 받기 위해 지게차에 실려 정비소 내부로 향하고 있다. /뉴스1

◇ 9월 초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 발표… 정부 논의 과제는?

① ‘PLC 모뎀+BMS 데이터’ 활용 ‘통합관리체계’ 구축

정부는 최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다양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우선 PLC 모뎀 활용 방안이다. PLC 모뎀이 과충전으로 인한 화재 예방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원래도 전기차 내부 BMS에는 과충전 방지 기능이 있는데,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 역시 이런 BMS에서 배터리 충전 상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아야 과충전을 막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PLC 모뎀이 과충전의 ‘이중 방지 장치’가 될 수는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가 충전된 뒤 운행하지 않았더라도 방전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때 충전기가 꽂힌 상태라면 차에서 충전기에 추가 충전을 요구하고 충전기가 이에 응하면 과충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는 이런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환경부는 나아가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로 배터리 충전 상태 정보뿐 아니라, 충전 시 온도나 배터리 내구수명(SoH) 등도 수집해 제조사와 차 소유자 등에 제공하는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한 ‘통합관리체계’를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구상하는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BMS 데이터를 지금보다 더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문제는 BMS가 전기차 배터리를 관리하고 차가 배터리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기차 성능과 안전수준을 결정하는 핵심기술이기에, 제조사 입장에서 관련 정보 공개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란 것이다. 환경부의 BMS 데이터 공유 요청에 현재 대부분의 제조사는 신중히 검토 중인 입장이다.

사진은 9일 서울 시내 한 건물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소에 게시된 전기차 화재 관련 안내문. /뉴스1

② 전기차 제원표에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 결정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환경부는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 인증 시 제조사로부터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인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했는지 등 ‘종류’는 제출받지만, 배터리 제조사까지는 제출받지 않는다. 즉 정부도 전기차별로 어느 제조사 배터리가 실렸는지 모르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전기차 제원(자동차의 성능과 특성을 나타내는 수치·규격·무게 등) 안내에 배터리 제조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은 2018년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이미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규정을 마련한 상태다. 모든 전기차 배터리와 산업용 배터리가 개별 식별이 가능한 고유의 전자기록(배터리 여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EU 계획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도 배터리 정보를 반드시 공개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다만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의 납품처는 통상 영업비밀로 여겨진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강제하면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수입차 제조사 문제 제기로 통상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13일 자동차 제조사들을 만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 사고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 전기자동차는 지상 주차장에 주차하라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③ “건물 지하 몇층까지?”… 전기차 충전기 설치 규정 정립

진화가 어려운 건물 지하에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이 적절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제정한 민간 방재기술기준인 ‘한국화재안전기준’엔 ‘전기차 충전설비는 지하에 설치하지 않아야 하며, 부득이 지하에 설치하는 경우 지하 2층 이내에 설치하고, 건물 입구나 경사로 근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전기차 충전 기반 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에 따르면, 새로 건축 허가를 받는 건물은 지하 3층까지 설치할 수 있게끔 규정하고 있다. 신축 건물이 아닌 이미 설치된 건물 지하의 충전기에 대해선 제어할 방도가 없는 데다가, ‘지하 3층’ 역시 근거가 모호해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현재 지하에 설치된 충전기가 몇기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12일 환경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소방청 등이 함께 참여하는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다음 달 초 이런 논의 내용을 망라한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 2022년 43건, 지난해 72건으로 증가세다. 이 중 18.7%는 ‘충전 중’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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