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된 철도, 철도가 된 런던…'해리포터 승강장'에서 '워털루역'까지
런던 12개 터미널역 탐방기(上)에서 계속 : '서울역' 만한 역이 10개…'철도 수도' 런던의 기차역을 가다
채링 크로스 역
우리는 다시 순환선을 타고 엠뱅크먼트 역으로 향했다. 채링 크로스 역(7)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리니 런던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넘실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둑 근처에 수많은 관광지들이 연달아 있는 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라팔가 광장까지 이어지는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다 보니 오히려 채링크로스 역의 출구 하나는 문을 닫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말이라 폐쇄했다는 말이 네트워크레일의 안내문에 써 있었다.
평일에는 통근객으로 미어 터지고, 주말에도 주변의 인파를 분산시키고 있는 이 역 역시 한때는 폐역 위기를 겪었다. 심지어 19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논란이 문제였다. 채링크로스 역은 런던 동남부에서 접근해 런던 도심에 종착하는 광역철도의 종착역이다. 이 역은 템즈 강을 철교로 건너온 부분에 있다. 역 승강장의 동쪽 끝 부분이 아예 강 위에 있다. 그런데 철도만 다리를 건너게 되면 당연히 다른 교통은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엔 없다. 런던 의회(council)에는 1889년부터 이 다리를 폐지하고, 템즈 강 건너편에 역을 세우고 도로 교량으로 철교를 대체하자는 대안이 한 인물에 의헤 제출되었다.
물론 범선 시절부터 런던의 핵심부였던 곳에서 철도회사가 역을 쉽게 철수할 리 만무했다. 아예 전철화되어 광역철도가 운행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대안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1926년에는 철도교 위에 도로교량을 짓자는 안이, 1928년에는 다시 철도를 폐지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1923년 이미 철도회사가 통폐합된 덕에, 당시 수상(스텐리 볼드윈)이 정치적으로 철도 폐지 대안을 밀어붙이는 사태도 벌어졌다(1930년). 다행인 것은 1936년 런던권 교통자문위원회에서 이 대안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통해 철도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다만 당시 위원회는 도로교량의 추가도 권고했던 모양이다). 2차 대전으로 채링 크로스 역의 폐지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사실을 점검하면서 사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1930년이라면 자동차 확산이 시작된 시기다. 이 때 볼드윈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철도와 채링크로스 역을 모두 도로로 바꿨다면 아마도 런던 동남부에서 진입하는 도로 교통량이 런던 도심으로 곧 몰아닥쳤을 것이다.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철도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이 다리는 런던의 교외에 날로 늘어나는 자동차를 런던 도심부로 꽂아 넣는 주삿바늘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이 바늘을 타고 런던 도심은 결국 자동차 지배 아래 넘어갔을 것이고, 우리가 목도했던 인파의 경쾌한 흐름은 정체에 휩싸인 채 서로 짜증을 내고 있는 자동차 정체 행렬로 바뀌었을 것이다. 트라팔가 광장을 승용차 정체가 하루 종일 포위하고, 혼잡통행료 같은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자동차 이용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받았을 지 모른다. 공공교통과 걷기의 도시 런던이 자동차 지배의 현장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던 현장이 바로 이 역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철교 옆에 생긴 보도교(골든 쥬빌리 교)를 건너 워털루 역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 다리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진 기후 시위대와 마주했다. 그나마 공공교통이 숨통을 붙이고 있을 수 있도록 만든 현장에서, 이들 기후 시위대를 만난 셈이다. 짧은 말로 몇 마디를 나누던 사이, 멀리 웨스터민스터 교를 건너는 시위대 본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백년 동안 이 도시에 누적된 여러 선택 덕에, 이 도시는 많은 이들이 미래를 위해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질 배경이 되어 줄 것이라는 조금은 근거없는(?) 희망이 들었다.
강둑 위 공원에는 여름을 즐기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넬슨 만델라의 흉상까지 이 곳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다른 지역에서는 바르토크 벨라의 동상도 보았다). 역사의 두께는 무슨 수를 써도 넘을 수 없는 것일까?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풍물을 마주하며, 여러 생각을 일행과 나누다 도달한 곳은 런던 최대의 역, 워털루(8)였다.
워털루 역
이 역은 출입구부터 남달랐다. 하얀 대리석에 1차 세계대전의 시작, 종료 년도가 쓰여 있는 이 높다란 문으로 수많은 승객이 드나들었다. 얼마 뒤 입수한 이 문의 개관 기념 포스터는 더욱 더 인상적이었다(그림 10). 건강과 즐거움의 문이 이 문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이 문 뒤로는 전원의 해변이 그려져 있었다. 이들을 런던 남쪽에 펼쳐진 전원과 해안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것이 워털루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라는 뜻일 게다.
여기서 출발하는 노선은 남서 본선(South West Main Line)이다. 이 방향은 고속열차가 다니기에는 거리가 어중간한 편이다. 덕분에 이 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리는 하루 24만 명의 사람들은 위성 도시에서 광역철도를 타고 온 사람들이다. 24만 명, 때마침 승강장도 24개다. 서울역보다 거의 2배 큰 역에서, 비슷한 수의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이 이 역의 상황이었다. 물론 이것도 모자라, 채링 크로스에서 출발해 남동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잠시 멈추는 워털루 동역도 있고 말이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된통(?) 당하고 말았다. 워털루 본역과 동역 사이의 환승 통로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메다, 겨우 찾아 들어간 출구는 승강장까지 계단을 100개 넘게 지나야 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된 도시라, 그리고 하나하나 일관되게 정비하기에는 밀도가 충분히 높지 않은 덕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워털루 본역에 있던 옛 유로스타 승강장(세인트판크라스 역과 접근 터널이 개통하기 전에는 이 역이 국제역이었다고 한다)처럼, 핵심부의 시설은 꾸준히 정비해 쓰고 있었다.
런던 브릿지 역
동역에서 우리는 런던 브릿지 역(10)으로 향하는 열차를 기다렸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멀리 치솟은 고층 빌딩이 보이는 와중, 우리 눈길을 끈 것은 광역철도 차량의 제3궤조와 집전 슈(shoe)였다. 전동차의 운행에 필요한 전기를 차량 지붕에 달린 팬터그래프가 아니라 아래쪽에 달린 집전 슈에서 받아오고 있던 것이다. 런던 도시철도와 광역철도는 터널의 단면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아주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급전 시스템이다. 마침 이 역은 이렇게 다른 선로로 달리는 열차의 옆구리를 볼 수 있는 각도를 제공해 줬다. 이 슈가 마찰하면서 레일 위에는 마치 다림질을 한 것 같은 자국이 남았다. 물론 이건 안전과 성능에는 문제가 된다. 레일로 잘못해서 떨어지면, 아주 쉽게 감전이 될 수 있는데다, 승강장의 사람과 도선이 너무 가까워 전선에 고전압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래된 전기 철도라 볼 수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오래지 않아 우리가 탈 열차도 도착했다. 런던 브릿지까지는 물론 지척이다. 2km를 느릿느릿 달려 5분만에 도착한 이 역은 선하 역사였다. 다시 말해 역사가 선로 아래쪽에 있었다. 멋들어진 파사드 대신, 철도 고가의 측면이 이 역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우리 일행은 조금 실망할 수 밖엔 없었다. 선로가 대합실 위쪽에 있다는 점에서 역의 구조를 눈으로 조망하기도 적당하지는 않았다. 다만 철도 고가가 엄청나게 높아, 그만큼 개방감 있는 실내 공간이 나왔다는 점 만이 우리에게 흥미를 줬다.
역사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새 설비로 가득했다. 역에서 조금 벗어나 본선 고가를 살펴보았다. 고가 선하지에는 널찍한 공간을 활용해 여러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의 원조가 바로 이 런던 브릿지 역 인근의 광역철도 고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요 역 주변의 막대한 유동 인구, 그리고 고가 아래의 널찍한 부지, 세월의 흔적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의 상권. 런던 브릿지 역 부근의 이 풍경은 고가가 건설된 1836년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지상 철도의 지하화부터 외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일본 대도시들의 도카이도센 연선과 함께) 바로 이 곳이다.
우리는 런던 브릿지의 높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캐논 스트리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바쁘게 내려서 길을 재촉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열차에 오르니 한산했다. 알고 보니 캐논 스트리트 역은 시티로 들어가는 출퇴근객들이 애용하는 역이라, 우리가 돌아다닌 주말에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네였던 모양이다. 다시 우리는 템즈강을 철교로 건너 느릿느릿 역으로 들어섰다.
캐논 스트리트 역
한산한 캐논 스트리트 역(9)은 개찰구도 절반은 꺼 버린 상태였다. 채링크로스 역 처럼 템즈 강 위에 반쯤 걸린 이 역은 아마도 평일에 와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19 직전 승하차객이 5만 명 이상이고, 주변에 한 번은 들어본 금융, 컨설팅 등등 고차 서비스업 회사들이 들어찬 빌딩이 즐비하니 전형적인 도심 통근용 역인 건 틀림없었다. 이른바 메가시티를 지탱하는 철도역이라면, 런던에서는 바로 이 곳이 손으로 꼽을만한 곳일 것이다.
아무튼 주말을 맞아 썰렁한 이 역 대합실에서, 우리는 17세기에 특허를 받았다는 배관공들을 대표하는 상을 만날 수 있었다. 캐논 스트리트 역을 건설할 때, 이 자리에 있던 배관공 홀을 부수고 들어선 덕에, 특허를 받은지 400년을 기념하여 역 구내에 배관공의 상이 들어설 수 있었다는 설명을 읽었다. 노동의 기억을 어떻게 도시에 남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다, 이 곳이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중심지로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시티 한복판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이 낙차 덕에, 나는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자, 캐논 스트리트 역을 곧바로 마주보고 선 건물의 한 멋진 문 앞에서 건장한 흑인 모델이 화보를 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바라보다 아직 두 개 역이 더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티의 길목을 헤메이다, 빌딩에서, 2층 버스를 빌려서, 결혼식을 하는 새 부부와 하객의 무리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박수를 쳐 주며 앞으로 나갔다.
펜처치 스트리트 역
그렇게 공사중인 모퉁이(중세부터 했는데도, 아직 공사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를 돌자, 동인도회사의 옛 건물과 함께 펜처치 스트리트 역(11)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빌딩 숲 사이를 뚫고 뻗어 있는 고가 철도가 반가웠다. 접근해 살펴보던 찰나, 아뿔싸. 역이 문을 닫았다. 주말에는 개량 공사를 좀 더 쉽게 하기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영업을 며칠 그만 두고 개량 공사를 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아직은 한국은 이런 모습이 상식 밖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겠지만, 결국 시설이 낡고 기후 변화로 인해 시설의 마멸이 더 심해질 수 밖에 없으니 오래된 인프라부터 이런 모습은 점점 더 흔해지겠지.
이렇게 오래 되었지만, 이 역 위에는 아예 빌딩이 올라가 있다(One America Squere). 열차가 뚫고 지나가는 광경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길이 빌딩을 뚫는다는 것 만으로도 역시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하루 평균 승하차객이 5만 명이니, 이 광경을 이들 수만 명과 주변의 십수만 명이 함께 나눈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금 더 가면 도클랜드 경전철의 고가 터미널 역도 있었다. 21세기 들어와 새로 개발된, 메가 시티의 첨단을 새로 지은 고가 철도가 뚫고 달린다. 동아시아의 한 메가시티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뭐라고 생각할까?
리버풀 스트리트 역
펜처치 스트리트 역의 내부에는 일을 보려면 근처 리버풀 스트리트 역으로 가라고 적혀 있었다. 시키는대로 리버풀 스트리트 역(12)으로 갔다. 대망(?)의 마지막 역 답게, 이 역은 18개 플랫폼이 있는 커다란 역이었다. 대 동부 본선(Great Eastern Main Line)의 출발역이기도 해, 장거리 열차의 출발도 잦았다. 지면보다 한 층 내려가 있는 대합실을 내려다 보며,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 헤어지기 아쉬워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재미는 이 곳에서도 쏠쏠했다. 온갖 공연과 차량, 그외에 정체가 불분명한 여러 소음이 가득한 것을 보니, 이 곳은 역시 주말에도 활력이 넘치는 동네인 모양이었다. 하긴, 19세기 말엽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20만 명이 이용하는 역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이니.. 게다가 이 역은 코로나19 이후 사람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물론 엘리자베스 라인의 개통 덕분인 것 같지만.
이대로 답사를 끝내기엔 못내 아쉬워 주변을 돌아보던 중, 여러 어린이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도망온 유대인 어린이들이 런던에 도착한 것이 바로 이 곳, 리버풀 스트리트 역이었다는 것을 기리는 동상이었다. 잠깐 사진을 찍으려 하자 동상 좌대에 걸터앉아 있던 시민이 몇 마디 말을 걸어왔다. 아마도 내가 수박 밑에 'I ♥ Palestine'이라고 적힌 에코백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국은 이웃 나라와 바다로 떨어져 있지만, 이웃과 피할 수 없이 엮여 있다는 것을 이 동상을 보며 늘 상기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말. 이 동상의 모델들이 살던 시대와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마음을 가볍게 할 수는 없는 시대인 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마치고 저녁을 먹으며 동료들과 얼마나 걸었나 체크해 보았다. 한 20km쯤은 되었던 모양이다. 시간도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의문이 하나 풀렸다. 얼마 전까지 나는 대체 그렇게 유럽을, 영국을 가는 사람이 많고, 메가시티 철도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데, 철도 지하화 같은 것만 여론의 주목을 받고 그 방대한 규모는 전혀 주목받지 않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대충은 알 것 같다. 거대도시 철도망이라는 이 존재를 눈에 보이게 만들려면,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해서 잘 다듬어졌는지 확인하려면 (조금 과장을 섞어서) 커다란 산을 연구해서 등산하고 종주하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몸을 던져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답사를 마치며
런던에 이토록 터미널 역이 많은 것은 독특한 것이 맞다. 독일어권을 시작으로, 많은 유럽 대륙에서는하나의 도시에는 하나의 중앙역으로 모두 선로를 몰아 넣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 맞으니. 그렇지만 런던은 하나의 역으로 커버하기엔 너무 크다. 아마도 지금만큼 많은 열차를 공급하려면 승강장이 150개 필요할테니, 터미널 역의 너비만 2km가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객 용으로 이렇게 거대한 역은 승객에게도 운영자에게도 고통이다. 방향별로 쪼개는 것이 런던과 같은 거대 도시에서는 아마도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전국망 본선의 구조에 따라, 즉 동해안 본선 ∙ 미들랜드(중앙 내륙) 본선 ∙ 서해안 본선 ∙ 대 서부 본선 ∙ 남서 본선 ∙ 브릭턴 본선(정남향) ∙ 남동 본선 ∙ 대 동부 본선, 8개 방향의 역은 필요할테고, 여기에 도심부에는 더 접근성이 좋은 역을 붙여주다 보니 지금의 숫자가 나온 것일 테다.
특히 영국에서 철도 민영화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 이렇게 방대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터미널 역이 따로따로 쪼개져 있으니 사업권을 별도로 분할해서 팔기도 좋다. 또한 철도부지를 기반으로 한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도 좋다. 이렇게 오래되고 거대한 네트워크라면 사용도가 떨어지는 낡은 부분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고, 그 부분이 위치한 땅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수순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상에도 한계는 있었다. 방대한 망과 거대한 도시를 커버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사방팔방으로 팽창해 있는 네트워크를, 사용자가 타기 편하게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연계하려면 통합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 그 기능은 공공기관인 네트워크 레일이 하고 있었고, 이제는 철도 운영까지도 공영화해야 한다는 것이 영국의 국민적 동의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더불어 이들 네트워크를 정리하여 땅을 팔아 먹으면, 결국 후세대에게, 도시에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도 런던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는 사항 같았다. 채링 크로스, 캐논 스트리트, 펀처치 스트리트 역을 제거했다면 물론 그 부지에 약간의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하루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했을 것이고, 그만큼 혼잡하여 지금처럼 시티가 다시 번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막대한 혼잡 통행료(25파운드)를 자동차에 부과하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상의 망을 유지한 채, 지하 공간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추가 선로(크로스레일 등)를 짓는 작업이 지금 런던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철도망은 거대 도시와 한 몸이다. 자동차가 그 아성에 도전하긴 했지만, 기후 위기 시대가 온 이상 다른 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런던, 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에서는 그렇다. 철도망과 함께, 이 도시를 어떻게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가꾸어 갈 것인지가 오늘의 과제다. 그런 점에서, 서울보다 백 년 가까이 먼저 철도를 활용해 왔고 그 존재감 또한 훨씬 더 뚜렷한 런던의 철도망은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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