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비보이, 그리고 올림피언···홍텐 “일본·중국과 겨룰 젊은 후배들 많이 나와주길”[올림픽x인터뷰]

김은진 기자 2024. 8. 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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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브레이킹 남자부 조별 예선을 마치고 믹스트존에서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리 | 김은진 기자



김홍열(40)은 한국 브레이킹댄스의 레전드다. 실명보다 비보이네임 ‘홍텐’으로 더 유명한 김홍열은 1984년생이다. 마흔에 처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올림픽 무대에 섰다.

중학교 때 브레이킹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춤을 춰서 외국에 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고, 유명해지리란 생각도 못했다. 스스로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한 정도로 올림픽은 가끔 TV 채널을 돌리면서나 보던 남의 일이었지만, 김홍열은 불혹에 올림피언이 되었다.

김홍열은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브레이킹 비보이 부문에 출전했다. 조별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전세계 최고의 비보이 16명이 출전한 브레이킹은 4명씩 4개 조로 나눠 같은 조의 다른 3명과 2라운드제로 1대1일 배틀을 붙어 9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더 많은 표를 받으면 승리하는 방식으로 조별예선을 치렀다. 조별 상위 2명이 올라가는 8강, 김홍열은 C조 3위에 머물러 가지 못했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역시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브레이킹에서 은메달을 땄던 김홍열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하고 나간 올림픽에서 첫 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아쉬움이 매우 컸다.

브레이킹 대표 홍텐(김홍열)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콩코르드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브레이킹 남자 조별리그에 출전해 멋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2024.8.10.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JIN



흥을 가득 차 무대 위에서 즐기는 것이 전부인 비보이들이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김홍열도 안 하던 긴장을 했다. 김홍열은 “역시 아쉽다. 8강까지는 갔으면 좋겠다 했는데 안 돼서 아쉽다. 다른 대회 때는 워낙 긴장을 안 하고 해서 이번에도 그런 컨디션을 기대했는데 역시 올림픽은 다른 것 같다. 무대도 너무 멋지고 해서 긴장한 것 같다”며 “그래도 홀가분 하다. 1년 넘게 계속 열심히 노력해서 달려왔는데, 이제 끝났으니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참아왔던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휴가를 가고 싶다”고 웃었다.

‘이제 자유다’ 할 정도로 생애 처음 맞닥뜨린 올림픽을 위한 준비와 긴장의 시간이 길었다. 김홍열은 “다른 대회에 비해 조금 더 무리를 했다. 브레이킹이라는 게 이런 솔로배틀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럿이 같이 하는 것도 많은데 그럼 부담을 서로 나눌 수가 있어서 편한데 혼자 하니까 그게 힘들고 그걸 1년 동안 계속 하니까 심적으로도 몸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 달 뒤면 자유다’ ‘며칠 뒤면 자유다’ 그런 생각했었다”고 웃었다.

비보이들에게 올림픽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무대였다. 일본의 히로토 오노(20·비보이네임 히로10)와 치샹위(19·비보이네임 라이팅)는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늘 흥겨운 비보이들에게는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하다.

브레이킹 대표 홍텐(김홍열)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콩코르드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브레이킹 남자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2024.8.10.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JIN



김홍열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도 여기 오기 전부터 선수촌에서 연습하다가도 ‘올림픽 끝나면 어떨까’ 생각하다보면 갑자기 주저앉아서 눈물이 나오고 그랬다. 이런 큰 무대는 우리가 다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고, 다 노력했고 그게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은데 기대치보다 낮으니 다들 눈물이 났을 거다. 하지만 그 친구들한테는 미래가 있고, 나는 이제 춤 인생의 거의 마지막 챕터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하는 생각에 좀 주저앉게 됐었다”고 했다.

마흔살에 스무살 어린 선수들과 비보이 세계에서 겨루고 올림픽 무대에까지 최고령으로 출전한 김홍열에게 파리올림픽을 위한 1년은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김홍열은 “나이는 내가 제일 많아도 체력은 가장 좋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어린 선수들에게 에너지에서 밀리는 게 느껴졌다. 몸을 쓰는 게 달라서 그들은 몸이 계속 발전하는데 나는 어떻게든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돼서 힘들었다”고 했다.

브레이킹 대표 홍텐(김홍열)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콩코르드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브레이킹 남자 조별리그에 출전해 멋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홍텐은 프랑스의 라겟(LAGAET)과의 대결을 1:1로 무승부로 마쳤다. 2024.8.10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KO



브레이킹은 파리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지만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는 또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언제 다시 채택될지 모르므로 이날의 도전이 이 비보이들에게 모두 일단은 마지막 기회였다. 김홍열은 언젠가 또 이런 도전의 기회를 잡아줄 후배들을 기대한다.

김홍열은 “우리나라가 브레이킹에서 어린 친구들이 많이 없다. 일본 중국은 진짜 많은데 그들과 겨룰 수 있는 레벨의 젊은 친구들이 우리나라도 많아지면 좋겠다. 계속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면 좋겠는데 아쉽다. 이게, 직업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를 선택할 때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수입이 얼마냐는 얘기를 하게 되면 좀 부끄러워질 때가 많지만 원래 돈에 욕심이 좀 없다. 하지만 내 인생은 만족스럽다. 자기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에 좀 더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땀을 흘리며 돌아가는 길에 일본의 스무살 비보이 히로10과 마주친 김홍열은 서로 “마이 프렌드” 하면서 격하게 끌어안고 생애 첫 올림픽을 마친 비보이들의 정을 나눴다. 비보이 ‘홍텐’은 “에펠탑도 보이고,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옆에서, 이런 날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응원 속에 춤을 춘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설레게 했다. LA올림픽에서 다음 세대가 이걸 잇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파리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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