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은·동·금… 리디아 고, 천재소녀에서 파리의 여왕으로
“리디아 고가 13살인가 14살부터 호주 선수들과 함께 연습 라운드를 했다. 그 세월도 정말 오래됐는데 리디아는 여전히 젊다. 정말 어린 나이에 모든 걸 해냈다.”
호주 골프 대표팀 감독인 여자골프의 전설 카리 웹(50·호주)은 2024파리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로 LPGA투어 명예의 전당 입성까지 이룬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축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리디아 고는 11일(이하 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인근 기앙크루 르 골프 나시오날(파72·6374야드)에서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 여자골프에서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2위 에스터 헨젤라이트(독일)를 2타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7년 4월 24일 서울에서 태어난 리디아 고는 여전히 27살이다. 그는 고보경이란 이름으로 서울 대방동에서 유치원을 다니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에 이민했다.
이 금메달로 리디아는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27세 10개월의 나이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인비(36)를 제치고 27세 3개월 만에 최연소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게 됐다. 올림픽 전까지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에 1점이 모자랐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LPGA대회 일반 대회에서 우승한 것처럼 명예의 전당 포인트 1점을 지급하는 규정에 따라 명에의 전당 입성 조건인 27점째를 획득했다.
리디아 고는 올림픽에 세 번 출전해 금·은·동 세 종류의 메달을 모두 수집했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복귀한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가리는 연장전 끝에 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신데렐라 스토리가 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진 리디아 고는 그 다짐대로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골프 사상 처음으로 3회 연속 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리디아 고가 LPGA투어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했던 예언 같은 인터뷰도 다시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파리올림픽이 기대된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 모르지만, 모든 색깔의 메달을 수집해 동화 같은 결말이 될 수도 있다. 2028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있지만, 그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은 운동 선수가 아니라 올림픽 선수라고 농담한다. 뉴질랜드를 대표한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웹은 “리디아 고가 모든 종류의 메달을 딴 것이 놀랍고, 올림픽에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게 돼 놀랍다. 그녀는 그럴만한 금자탑을 쌓았고 LPGA 역사에 한 부분이 될 자격이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파리 올림픽 남자 골프 금메달을 딴 스코티 세플러(28)는 1996년생이지만 골프 커리어를 따지면 리디아 고가 한 세대 위의 선수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골프 천재 소녀’로 불리던 리디아 고가 LPGA투어 첫 우승을 거둔 것은 그가 열 다섯이던 2012년 캐나다 여자오픈이었다. 이듬해 아마추어 신분으로 캐나다 여자오픈을 2연패한 리디아 고는 2014년 LPGA투어에 데뷔해 그해 3승을 거두며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했다. 통산 20승(메이저 2승)을 거둔 리디아 고는 전성기 시절의 박인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와 경쟁하며 승수를 쌓았다.
리디아 고의 커리어는 깊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리디아 고는 데뷔 첫해인 2014년 3승, 2015년 5승, 2016년 4승으로 3년간 12승을 거두었다. 2015년 최연소로 여자골프 세계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에 이르는 시기에 캐디와 스윙코치, 골프용품까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바꾸면서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리디아 고의 골프 인생을 바꾼 이는 2022년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외아들인 남편 정준 씨다. 골프 천재라는 별명이 따라붙던 리디아 고에게 ‘현대가의 며느리’라는 새로운 별칭이 생겼다. 오직 골프밖에 모르던 그에게 삶의 관점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리디아 고는 정준씨와 처음 만난 직후인 2021년 4월 롯데 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L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했다. 이듬해 3승을 올리며 다시 LPGA 최고 선수 자리에 올랐다. 5년 5개월 만에 세계 1위에도 복귀했다. 리디아는 “그(정준)가 제 얼굴에 미소를 갖게 해준다. 더 열심히 연습하고 싶어졌고 골프를 더 즐기게 됐다”라고 했다.
또 지난 동계훈련부터 함께 한 이시우 코치는 여러 골프 스윙 스타일로 혼란스러워하던 리디아 고에게 기본을 찾아주었다.
리디아 고는 베테랑다운 우승 소감을 밝혔다. “오늘 2타 차 리드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는데 어렸을 때는 모두가 나를 쫓고 있다며 떨다가 경기를 그르쳤을텐데 2타 차 여유가 있으니 내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고 나선 것이 좋았다. 특히 요즘 티샷 실수가 많아서 자신있게 티샷을 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 잘돼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정말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이번 주에 경기에만 집중하려기 위해 소셜 미디어도 없애고 금메달 도전을 즐기려고 했다. 갤러리들도 정말 멋졌고 이렇게 흥분된 적이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덧붙였다.
리디아 고는 금메달을 확정짓는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편에게 공을 돌렸다. 리디아 고는 “지난 2022년 시즌 최종전인 CME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많이 울었다. 약혼을 하고 처음 우승하는 것이었고 약혼자가 엄마, 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감정이 북받쳤다. 이제 남편이 된 그가 오늘은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 여러 감정이 교차해서 울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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