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민자가 나라를 더 위대하게’...영국 극우 반대 시위에 수천명

장예지 기자 2024. 8. 11. 10: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시민단체 ‘스탠드업투레이시즘’ 주최로 열린 ‘극우를 막아내자(Stop the Far right)’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트라팔가 광장에 모였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을 멈춰라.”

10일(현지시각) 오후 영국의 우익 정당으로 꼽히는 영국개혁당 당사를 둘러싼 시민들의 외침 소리가 커져갔다. 런던 중심부 웨스트민스터 지역에 우뚝 선 당사 앞에 수천명이 모여 나이젤 패러지 당 대표를 비판했다.

시위대가 이날 영국개혁당 당사 앞에 모인 이유는 지난달 29일 영국 사우스포트에서 벌어진 어린이 흉기 사망사건과 관련한 패러지 영국개혁당 대표 최근 발언이 극우 시위를 조장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패러지 대표는 용의자로 10대 청소년이 체포된 뒤인 지난달 30일 이 사건이 왜 ‘테러’로 취급되지 않느냐며 “진실이 숨겨지고 있는지”를 묻는 동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음모론을 부채질했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 10대 용의자가 망명 신청자이고 무슬림이라는 가짜 뉴스가 퍼지며 영국 전역에서 반이민 극우 폭력 시위가 열렸다. 지난 4∼5일에는 극우 시위대가 난민 신청자가 머무는 호텔이나 이들을 대리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건물이 불에 타거나 경찰도 폭행을 당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극우 활동가 토미 로빈슨은 이런 폭동을 “정당한 우려”의 결과라고 옹호하며 이민자에 대한 “대량 추방”을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꾸준히 올렸고, 그의 측근 다니엘 토마스는 “준비하라”며 행동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등 로빈슨과 함께 폭력 시위를 부채질했다.

이날 극우 반대 시위를 주최한 인종차별 반대 시민단체 ‘스탠드업투레이시즘(Stand up to Racism)’의 대표 사미라 알리는 “우리는 패러지 대표가 편견과 이슬람 혐오의 불길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길거리에 더이상의 파시스트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다수는 반인종주의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스탠드업투레이시즘(Stand up to Racism)’의 대표 사마라 알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스탠드업투레이시즘은 이날 약 5000명이 집회와 행진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집회가 끝난 뒤 런던 중심가인 트라팔가 광장까지 이어진 행진 도중 버스 기사와 승용차 운전자들이 팡파레를 울리듯 경적 소리를 내어 이들을 응원했다. 시민들은 나치 문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림이나 ‘패러지에게 노(NO)를’ ‘이민자가 이 나라를 더 위대하게 만든다’는 등의 문구가 적인 펼침막을 만들어 높이 내보이기도 했다.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시민단체 ‘스탠드업투레이시즘’ 주최로 열린 ‘극우를 막아내자(Stop the Far right)’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극우 나이젤 패러지 대표의 영국개혁당 당사 앞에 모여있다.
1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나이젤 패러지 영국개혁당 대표를 규탄하며 열린 ‘극우를 막아내자(Stop the Far right)’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펼침막을 들고 있다. 패러지 대표의 얼굴 옆엔 ‘패러지는 파시스트인가?’라는 메시지가 적혀있다.

이날 시위에서는 “(극우가) 소수자를, 무슬림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일어서서 싸울 것이다”라고 뒤따르는 구호도 반복됐다. 극우 세력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사람들을 선동해왔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관련 일을 하는 조르단 리베라는 이날 시위 현장에서 “현재 사회적 돌봄은 이민자 동료들 없이는 결코 작동할 수 없다. 그들이 영국에서 일하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인데, 극우의 표적이 될까봐 직장에 오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의 존재감 과시에 대한 불안, 위기감도 있다. 스탠드업투레이시즘을 이끌며 다른 국제인권·노조와 연대하는 알리는 “현재 극우는 조직을 갖춘 게 아니라, 토미 로빈슨 같은 극우 활동가가 영향력을 미칠 뿐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건 두려움과 증오다. 우리는 (극우가) 조직화되는 걸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루이스 닐슨은 “오늘 여기 나온 이들은 흑인과 백인, 동성애자, 이성애자, 무슬림, 유대인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린 이렇게 연대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극우를 이길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리베라는 “(보수당의) 리시 수낵 전 총리도,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총리도 결국 똑같다. 큰 기업들은 계속 부유해지고 부의 분배는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 위기 문제의 원인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고, 사람들이 난민을 탓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주말인 이날 영국에선 전국적으로 극우 반대 집회가 열렸다. 앞서 인디펜던트는 약 46개 지역에서 집회가 열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벨파스트 지역에선 1만5000명이 모였고, 120개 이상 단체가 참여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16㎞ 떨어진 지역의 이슬람 사원에 화염병이 떨어지는 등 무슬림이나 경찰을 노리는 극우 세력 공격도 있었다.

런던/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