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냐…무리한 세금은 줄여줘야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정부 개편안,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최근 2025년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게 핵심이다. 50%가 적용되는 30억원 초과 구간을 없애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10억원 초과에 40%가 최고세율이 된다. 대기업 최대주주에 대한 20%의 할증제도도 없앤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도 최고세율이 60%에서 40%로 낮아지게 된다.
최저세율 구간은 높였다. 10%의 최저세율 구간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인다. 동시에 자녀 공제금액은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무려 10배로 올렸다. 증여세 세율은 상속세 세율을 그대로 사용한다. 상속세율을 고치면 증여세율도 함께 달라진다. 세율이 낮아지면 사전증여 부담도 줄어든다.
"현행 상속세율은 징벌적 성격…완화 필요"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진 중산층의 부담을 줄여야겠다는 것이 세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원을 넘었다. 절반 이상이 10억원 이상인 상속세 대상이다. 상속세 공제 한도는 1999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물가는 2배 올랐다. 특히 수도권 주택 가격은 2.8배 뛰었다. 공제 기준에 그동안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설명처럼 중산층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된 방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금 부담이 크게 주는 건 과표가 30억원을 넘는 경우다. 가장 큰 혜택은 60%의 최고세율이 40%로 줄어드는 대기업 최대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상속할 자산이 10억원 미만이라면 달라지는 것이 없다. 중산층을 위해 추진한다는 자녀 공제 확대와 최저세율 조정의 혜택은 부유층도 누린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담긴 다른 내용도 부유층에게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간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나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는 물론이고 가상자산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 2년 유예도 마찬가지다.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낮춰주고 이들 기업에 투자한 개인 주주들의 배당소득세를 깎아준다는 내용에서도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는 것은 대주주들이다. 특히 가업을 승계할 때 상속세 과세 대상을 매출액 4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대폭 완화하고, 공제 한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하는 것은 오로지 기업 소유주의 세금 부담을 덜어준다.
물론 부자라도 무리한 제도적 부담을 지고 있다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맞다.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으로 세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것은 계층 간 대립과 갈등을 이용해 지지 기반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적절한 시각의 비판은 아니다. '부자 감세'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세금이라면 그 대상자가 누구든 줄여주는 것이 옳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조세평등주의 원칙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조세와 관련해 평등하게 취급받아야 하며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특정한 납세의무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 50%가 너무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높은 세율에는 부의 축적과 세습에 대한 징벌이라는 인식이 반영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평균은 26% 수준이다. 높은 세율에 지나친 징벌적 의미가 담겨 있다면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일괄공제 늘리는 방안이 합리적"
하지만 상속세에는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한다는 목적도 있다. 누진세 체계를 통해 소득재분배와 함께 경제적 균형을 추구하려는 조세정책의 목표와 방향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아야 한다. 세율을 인하하면 결과적으로 상속세 최고세율이 45%의 근로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낮아진다. 열심히 일해서 번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이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는 세금보다 많다면 이를 합리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세제는 놔두고 상속세만 낮추려고 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한 할증제도를 폐지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할 수도 없다. 실질과세 원칙에 맞지 않는다.
중산층이 집 한 채를 상속받아도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문제라면 차라리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는 편이 알기도 쉽고 편하다. 아예 공제 기준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유산 취득세로의 개편을 포기한 것도 아쉽다.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을 받는 사람이 각각 얼마 받았냐를 따져서 상속세를 매기는 것이 유산 취득세다. 1억원을 물려받은 상속인은 1억원을 기준으로, 10억원을 물려받은 상속인은 10억원을 기준으로 각각 세율이 결정된다. 상속세가 있는 대다수의 다른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부과 방식으로 납세자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과세한다는 원칙에도 맞다.
세법 개정안의 큰 방향이라고 할 감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율 인하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려면 적어도 경제적인 효과는 분명해야 한다. 세율을 낮추는 방법으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속세처럼 과세 대상이 적은 경우는 감세의 경기 부양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소득세나 법인세와는 확실히 다르다. 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고려하지 않는 감세는 옳은 방향이 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사실 감세가 비합리적인 조세정책으로 발생하는 시장의 왜곡을 줄이고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려면 세율은 낮추는 대신 세원은 최대한 넓혀서 경쟁 조건이 공정해지고 조세의 공평성도 높아져야 한다. 세원을 넓혀 얻는 세수 증대 효과는 세율 인하가 가져오는 세수 감소 효과를 상쇄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재정 건전성 악화를 방지할 새로운 방안은 없다.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로만 1조8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 자녀 공제 확대와 최저세율 구간 확대로는 각각 1조7000억원, 5000억원의 세수 감소를 예상했다.
상속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쾌한 세금일 것이다. 사람이 죽어야 나오는 세금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상심한 가족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또 통지서가 날아오는데 그걸 좋다고 할 사람은 없겠다. "가장 혐오하는 세금"으로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 개편할 필요가 있으면 당연히 고쳐야 하겠지만 지금보다는 합리적인 방향의 개편이어야 한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논의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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