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김홍열의 라스트 댄스?…한국 브레이킹의 미래는
"문체부 지원·실업팀 활성화로 선수 발굴해야"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한국에서 유일하게 2024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무대를 밟았으나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발길을 멈춘 비보이 '홍텐' 김홍열(Hongten·도봉구청)은 불혹의 국가대표다.
1984년생 김홍열은 브레이킹계에서 20년 넘게 비보이로 활동하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전설'로 손꼽힌다.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인 레드불 비씨원 파이널에서 2006년, 2013년, 2023년까지 세 차례 우승한 명실상부한 '레전드'다. 3회 우승은 네덜란드의 메노 판호르프(Menno)와 유이하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브레이킹 초대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김홍열의 마지막 퍼즐은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브레이킹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김홍열은 한국 최초의 브레이킹 올림피언이 됐다.
한편으로는 이번 대회가 사실상 김홍열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다.
브레이킹이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개최되지 않고, 2032 브리즈번 올림픽에서도 다시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11일(한국시간) 열린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마지막 퍼즐조각을 다소 아쉽게 맞춘 김홍열은 일단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
김홍열은 "올림픽이 끝나면 우선 올해는 쉬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9월에 열릴 2025 국가대표 선발전 브레이킹K 2차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기로 이미 결심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는 1, 2차 대회 성적을 합산한 뒤 파이널 대회를 통해 최종 선발하는데, 김홍열은 이미 1차 대회에도 불참했다.
"스포츠 쪽도 좋지만 문화 쪽에서도 나를 찾는 곳이 많다"는 김홍열은 "지난해부터 (아시안게임·올림픽 준비에) 소속 크루 플로어엑셀 등 문화 쪽에 너무 신경을 못 썼다. 거기서 해야할 일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며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 출전에 대한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활동하며 국제 대회 시상대에 꾸준히 오른 것 자체가 이미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비보이 김홍열'이 그 자체로 2000년대부터 브레이킹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이유다.
여전히 김홍열이 한국 최고의 비보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후배 비보이들의 빠른 성장을 기대하기도 한다.
실제 올림픽에 참가한 비보이 16명 중 유일한 한국인 김홍열은 최고령이었고, 가장 어린 선수와는 23살 차였다.
우승자 필립 김(Phil Wizard·27)은 물론, 이웃인 일본 비보이 나카라이 시게유키(Shigekix·22·4위)와 오노 히로토(Hiro10·19), 중국의 치샹위(Lithe-ing·19)까지 모두 10∼20대로 미래가 더욱 창창하다.
파리로 향하기 전 "미친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김홍열은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나 "어린 친구들만 따지면 우리가 많이 뒤처진 상태다. 직업을 선택할 때 돈을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우리도 열정을 쏟을 분야에 도전할 길이 생겼으면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배들, 제가 여기서 당한 거 다 복수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시원섭섭한 미소를 지었다.
정형식 브레이킹 대표팀 감독은 "피겨엔 김연아만큼 뛰어난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수영에선 박태환이 나왔지만, (이후 선수들은) 포스트 김연아, 포스트 박태환이라고 불린다"며 김홍열 역시 '비보이 김홍열'이라는 하나의 대명사인 셈이라고 봤다.
정 감독은 유일한 한국 올림피언은 불혹이고, 비걸은 올림픽에 진출하지 못한 현실에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정 감독은 "인재를 키우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브레이킹 등 비인기 종목은 슈퍼스타가 은퇴한 시점부터는 사실상 힘들어진다"며 "대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종목을 좀 더 예의주시하고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1년 엠넷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 비해 2022년 JTBC의 브레이킹 경연 프로그램 쇼다운은 그만큼의 화제성을 얻지 못했다.
정 감독은 "김홍열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굉장한 이슈를 일으킨다면 좀 더 환경이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지만, 김홍열이 올림픽 여정을 조별리그에서 마치면서 '브레이킹 붐'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로 좀 더 연기됐다.
현재는 서울시청, 도봉구청 두 팀에 불과한 실업팀도 더 생겨난다면 비보이·비걸의 성장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봤다.
본업은 따로 하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 브레이킹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결국 '금전'이라는 현실에 부딪쳐 브레이킹을 그만 두게 되는 비보이·비걸이 많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실업팀이든 프로팀이든 생긴다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다. 이 사람들이 끈을 끝까지 잡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며 "실력 좋은 비보이, 비걸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좀 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봉구청 소속 국가대표 비걸 권성희(Starry) 역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면서 브레이킹까지 하면 완전히 집중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돈 때문에 브레이킹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며 "실업팀에서 연습실과 급여가 보장된다면 브레이킹에만 모든 걸 쏟아내는 비보이, 비걸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soruha@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문의 진동소리…옛날 가방 속 휴대폰 공기계 적발된 수험생 | 연합뉴스
- 타이슨, '핵주먹' 대신 '핵따귀'…폴과 대결 앞두고 선제공격 | 연합뉴스
- 주행기어 상태서 하차하던 60대, 차 문에 끼여 숨져 | 연합뉴스
- YG 양현석, '고가시계 불법 반입' 부인 "국내에서 받아" | 연합뉴스
- 아파트 분리수거장서 초등학생 폭행한 고교생 3명 검거 | 연합뉴스
- [사람들] 흑백 열풍…"수백만원짜리 코스라니? 셰프들은 냉정해야" | 연합뉴스
- 전 연인과의 성관계 촬영물 지인에게 보낸 60대 법정구속 | 연합뉴스
- 머스크, '정부효율부' 구인 나서…"IQ 높고 주80시간+ 무보수" | 연합뉴스
- '해리스 지지' 美배우 롱고리아 "미국 무서운곳 될것…떠나겠다" | 연합뉴스
- [팩트체크] '성관계 합의' 앱 법적 효력 있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