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비싸다고 가치 있지 않다…작가·갤러리의 이해관계 읽어야

한겨레 2024. 8.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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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한 작가가 이우환이나 쿠사마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려면 자기만의 독자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

이러한 작가의 이해는 뒤늦게 거장이 된 작가를 전속하게 된 갤러리의 이해와도 일치해서 전속갤러리는 판매 가능한 작가의 신작 시장에 더욱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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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l 가치와 가격의 괴리 ① 원인
2023년 9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2023)을 찾은 관람객들이 쿠사마 야요이 작품 〈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시장에서 구매자가 주로 찾는 쿠사마의 작품은 초기 작업이 아니라 그의 <호박> 작업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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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건 명품이건 미술품이건 돈은 얼마든지 있는데 무얼 사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 요즘 사람은 그냥 ‘제일 비싼 걸 사라’고 권한다. 가치가 높을수록 비싼 가격이 책정된다고, 즉 가격이 가치를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양극화 시대에 제일 비싼 것을 사라고 할 때, 그 가격이 단순히 가치만 반영하는 것일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작품의 경우 미술사학자로서 평가하는 가치와 어긋난 가격이 형성되는 사례가 빈번한데, 이때의 시장 가격은 전문가들이 평가한 가치를 반영하기보다는 시장의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거의 화폐와 같은 유동성을 가진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이우환은 1969년 일본의 미술평론가 등용문인 미술잡지 <미술수첩>(미술출판사)의 예술평론 공모에 당선돼 평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모노하’(物派)로 불리게 되는 일군의 작가들의 이론적 리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한국, 프랑스 파리 등을 오가며 설치 작업 위주의 일본 모노하와 차별화된 회화 작업인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작업은 1960년대 서구에서 유행했던 시스테믹 회화, 하드에지 회화 등으로 불린 미니멀한 회화 양식과 유사해 서구 주류 미술계와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한편, 한국적이고 동아시아적인 담론에 기대며 서구와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 모노하에 이어 한국 단색화의 이론가이자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 그의 작업은 <바람으로부터>와 <조응>을 거쳐 현재는 <다이얼로그> 시리즈에 이르고 있다.

신작에 대기수요 몰려

이런 흐름으로 보면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는 그의 작업 중에서 미술사적인 가치가 가장 크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오히려 최근작인 <다이얼로그>가 더 인기가 있다. 초기 작품의 시장은 위작이 제작·거래된 사건이 이슈화하면서 급격히 위축됐고, 반면 2019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페이스갤러리가 작가를 전속한 이후 신작 <다이얼로그>의 공급 물량을 관리하면서 신작 시장에는 거꾸로 대기수요가 몰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우환 작품의 시장 가격이 미술사적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시장에서 이우환보다 더 핫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사례도 유사하다. 쿠사마는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등과 교류하며 퍼포먼스와 해프닝, 스펙터클한 환경작업, 부드러운 조각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뉴욕에 정착한 1950년대 말부터 선보인 그의 회화 〈무한망〉(Infinity Net) 시리즈는 추상표현주의적인 대형 화면과 자유로운 붓질을 사용하면서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스테믹 회화의 모노크롬과 체계적인 반복을 구사한다. 따라서 그의 초기 회화는 서구 미술사의 이른바 주류의 이행 과정을 정확히 보여주는 작업으로서의 미술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최근 시장에서 구매자가 주로 찾는 쿠사마의 작품은 초기 작업이 아니라 그의 <호박> 작업이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호박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됐고 수많은 호박 작품을 남겼다. 쿠사마도 세계 최고의 갤러리인 가고시안에 이어 페이스갤러리가 그를 전속하면서 상대적으로 후기작에 속하는 〈호박〉 시리즈의 시장이 주로 관리됐다. 그의 초기 작업에서 나타나는 물방울 모양의 점들이 투영돼 그려진 <호박> 시리즈는 팝아트 양식을 드러내면서 대중적인 장식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우환의 2020년작 〈다이얼로그〉. 크리스티 홍콩 2023년 5월 경매에서 19억원에 낙찰되며, 〈다이얼로그〉 시리즈 최고가를 기록했다. 크리스티 제공

일반적으로 한 작가가 이우환이나 쿠사마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려면 자기만의 독자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 이는 대개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의 주류 양식을 앞서가는, 즉 시대를 앞선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작가는 그런 성취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뒤늦게 미술사적 평가를 받게 되며,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가로서 시장에서도 작품이 팔리는 작가가 된다. 이 경우 작가 입장에서는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초기 작품을 무명 시절 상대적으로 헐값에 이미 팔아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거장으로 인정받은 후기의 작품이 고가에 팔려야 자기 성취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이해는 뒤늦게 거장이 된 작가를 전속하게 된 갤러리의 이해와도 일치해서 전속갤러리는 판매 가능한 작가의 신작 시장에 더욱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심지어 작가가 작품가격이 저렴할 때 판매했던 구작 시장과 차별화하기 위해 구작보다 신작을 더 높게 평가하는 일도 빈번하다. 좋은 작가를 일찍 알아보고 작품을 구매해 무명 시절 활동을 도와준 눈 밝은 컬렉터는 작가가 거장이 되고 나면 고마움보다 좋은 작품을 헐값에 가져간 인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진도 아날로그 방식에 인색

특히 사진의 경우 과거에는 대개 작가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직접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지에 인화했으며, 그 과정 전체가 작업이었다. 반면 오늘날에는 기계적·균질적으로 인화한 사진을 투명 아크릴판 사이에 넣고 압축하는 코팅 방식으로 제작하는 디아섹 작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작가적 성취를 이룬 젊은 시절의 아날로그 작업은 과정의 평가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훨씬 가치 있고, 더 이상 아날로그 제작을 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희소성까지 높다. 그런데 디아섹이라는 고급 액자로 제작한다는 이유로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신작을 더 고가에 판매하는 것이다.

미술 전문가들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 작가나 갤러리의 금전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와 갤러리가 참여하는 시장은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자와 가격을 책정하는 자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은 미술시장의 평가인 가격이 작품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게 되는 주된 원인이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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