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이도 초토화…미국 '유령함대'에 한국 유도로켓 쓰일까 [박수찬의 軍]
해군이 바다에서 적대적 행위를 지속하는 선박을 발견하면 공격해서 무력화한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대함미사일이다.
1967년 이스라엘 구축함 에일라트함이 이집트 고속정이 쏜 옛소련산 스틱스 대함미사일에 격침된 이후 대함미사일은 현대 해전을 상징하는 무기로 자리잡아왔다.
정밀타격능력을 지닌 대함미사일은 해전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자그마한 배까지 대함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은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기관포가 있지만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하다. 함포도 미사일보다는 타격 범위가 좁다.
비궁은 유사시 서북도서로 접근할 북한 고속정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됐다. 과거엔 해안포가 담당했던 역할이지만, 노후화로 인한 성능저하와 더불어 정밀타격능력 부재 등이 겹치면서 비궁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날카로운 화살’이라는 뜻을 지닌 비궁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LIG넥스원이 2012년부터 약 3년에 걸쳐 개발한 2.75인치 유도로켓이다.
공기부양정이나 소형 고속정을 대함미사일로 격파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미사일은 고가의 무기이고, 크기가 작은 표적은 놓칠 위험도 있다. 투입 규모도 다른 대형함정보다 크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소형함정도 정확히 타격하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 이유다.
비궁의 중량은 14kg으로서 고폭탄을 탑재한다. 동급에서 세계 최초로 자동표적 포착 및 추적 성능을 갖는 발사 후 망각(Fire & Forget)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약 7㎝의 작은 직경에 유도조종장치, 구동장치, 탄두, 비행측정장비 등을 탑재한다. 종이컵 크기 수준의 작은 공간에 이같은 장비를 밀어넣고, 추진기관까지 탑재해야 한다. 고도의 경량화와 소형화 기술이 필수다. 이를 달성함으로서 비궁은 높은 정밀도를 갖출 수 있었다.
이는 표적을 효율적으로 타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기존의 비유도 로켓은 넓은 범위를 타격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특정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ADD 자료에 따르면, 비유도 로켓은 1개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 241발을 쏴야하고, 관성항법 로켓은 47발을 쏴야 표적 1개를 파괴한다. 반면 비궁은 1발이면 충분하다. 비궁은 유도 시스템을 탑재해 목표물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어, 효과적인 타격과 최소한의 부수적 피해를 보장한다.
비궁의 제작사인 LIG넥스원은 해외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들은 소형 함정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대함미사일은 부피와 중량이 커서 고속정 등에는 탑재가 어려다. 비궁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해군 고속정에 비궁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UAE와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다수의 고속 보트를 운용하는데, 비궁은 이같은 고속보트 저지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미국 수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비궁은 지난달 12일 미국 하와이 해역에서 실시한 해외비교시험(FCT) 최종 시험발사에서 6발 모두 표적을 명중시켰다. FCT는 미국 국방부가 동맹국 방산기업이 가진 우수 기술을 평가해 미국이 추진하는 개발·획득사업으로 연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하와이에서 진행된 시험은 한국 해군 상륙함에서 발진한 미국 텍스트론사의 무인수상정(USV)에서 비궁을 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무인 표적-공중 무인기 탐지-위성통신-무인수상정 탑재 유도로켓 발사로 이어지는 과정에 무인화 개념을 적용했다.
지난해 10월 키웨스트에서 진행된 시험에서도 무인수상정에 탑재된 비궁은 6발을 발사, 모두 명중시켰다. 앞서 여름에 실시됐던 시험에선 5가지 시나리오에 걸쳐 이동 표적에 대한 고속연안공격정(FIAC)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텍스트론이 개발한 무인수상정은 미 해군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4세대 무인수상정이다. 기뢰 탐색 및 제거, 정보 수집, 감시 정찰, 항만 보안 등의 임무에 필요한 장비를 다양하게 탑재할 수 있다. 표적 획득을 위한 카메라나 레이더 마스트도 설치할 수 있다. 그만큼 작전적 유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최대 속도는 약 28노트(시속 52㎞), 항속거리는 1200해리(약 2222㎞)에 달하며 24시간 이상의 작전 지속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이 타지 않아 인명피해 위험이 없으면서도 자율적으로 작전을 진행하면서 유인 함정과 협력이 가능한 무인수상정을 대량운용하는 구상이 등장했다. 이것이 유령함대다.
유인 함정은 승무원의 안전과 편의성을 위한 설비가 필요하지만, 무인수상정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함정의 무게와 크기가 줄어들어 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승무원의 피로에 따른 교대나 물자 보급이 필요 없으므로 장기간 작전이 가능하며 다양한 장비를 탑재할 수 있다. 경량화된 설계로 인해 전개·회수가 빠르다. 작전 환경이 급변할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높다는 의미다.
적 해안 근처에서 정찰, 잠수함 탐지 및 공격, 기뢰제거 등 위험도가 높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되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번 시험에 투입된 텍스트론 무인수상정처럼 대함 공격용 무기를 탑재한다면, 유인 전투함의 교전을 돕는 보조 미사일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고성능 네트워크와 자율 운영 기술, 원격조종 기술 등이 필요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 구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LIG넥스원은 이번 시험발사의 성공적 마무리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수출 계약 체결에 주력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 확대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미국 수출이 성사되면 미국의 동맹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미 해군의 사업화 과정과 의사결정에 국내외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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