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그립습니다”…양궁·펜싱 현대차·SK ‘뚝심’ 지원에 회자되는 ‘이 기업’ [방영덕의 디테일]
하지만 올해 유독 파리올림픽 대회에서는 대기업들의 스포츠 후원이 빛을 발합니다. 회장님들의 존재감마저 팍팍 드러냈습니다.
한 종목에 대해 한결같이 지원하고, 공정한 룰을 적용해 협회를 운영하며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덕분입니다.
파리올림픽 내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전세계 응원을 불러일으킨 양궁과 펜싱, 사격. 이들 선수단을 묵묵히 후원해 온 ‘키다리아저씨’는 누가 있을까요.
지난달 29일(한국시간)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10연패를 달성한 날 현장에서 ‘참관할 때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다’는 반응에 정 회장은 “제가 운이 좋은 것 같다.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제가 묻어가고 있다”고 겸손해했는데요.
그러면서 “저도 할 수 있는 건 뒤에서 다 할 생각이고 선수들이 건강하게 남은 경기 잘 치를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무려 40년간 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한국 양궁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기간이지요.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단체 후원 중 최장기간을 자랑하는데요. 그 후원 금액만 400억원에 달합니다.
정 회장은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 전부터 직접 준비 과정을 챙겼다고 합니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길에 바쁜 일정을 쪼개 파리 현지 상황을 사전 점검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정 회장은 선수단 동선에 맞춰 경기장과 식당, 화장실 간 이동 시간을 살폈고요. 직접 걸어보며 걸음수나 소요 시간 등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기업들이 홍보 차원에서 스포츠 후원 쯤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그룹의 양궁 후원이 빛을 발하는 것은 정 회장이 양궁협회장으로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정 회장은 올림픽 기간 내내 양궁 경기장을 찾아 현장을 지키는 것은 물론 경기 때마다 탈락 선수들에 대한 위로를 잊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정 회장은 개인전 경기 이후 홀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전훈영 선수를 따로 찾아 격려했습니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후배들을 이끈 ‘맏언니’로서의 공로에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죠.
정 회장은 한국 양궁의 전 종목 석권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선대 회장(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력을 통해 구축된 양궁협회의 시스템”이라고 밝혔습니다.
정 회장이 밝힌 시스템은 학연·지연을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뽑는 공정성과 우수 선수 육성 프로그램, 스포츠 과학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등을 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선수들, 스태프들의 믿음”이라며 “서로 믿고 한마음으로 했기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파리올림픽에서 전종목을 석권, 금메달 5개를 포함,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휩쓸며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새로운 신화를 썼습니다.
SK텔레콤은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뒤 지금까지 일편단심 펜싱을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펜싱협회장을 맡고 있는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도 이번 파리 올림픽 펜싱 경기 내내 현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했는데요.
SK텔레콤은 그 동안 펜싱 선수들의 해외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출전 비용 등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2004년부터는 19년째 ‘SK텔레콤 국제 그랑프리 펜싱’ 대회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든든한 후원 덕분에 펜싱은 명실상부 한국 스포트의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SK그룹은 펜싱과 더불어 비인기종목인 핸드볼 후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핸드볼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는데요.
학창 시절 핸드볼 선수였던 최 회장은 2008년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한 이후 2011년 핸드볼 전용 경기장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지어 협회에 기부하고 SK호크스(남자), SK슈가글라이더즈(여자) 팀을 창단해 핸드볼의 숙원 사업들을 속속 해결해 왔습니다.
사격은 한화그룹이 꾸준히 후원해왔습니다. 비록 현재는 대한사격연맹 회장사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만 사격이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한화그룹의 아낌없는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스포츠업계의 평가입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01년 한화갤러리아 사격단을 창단했습니다.
한화가 회장사를 맡은 이후 첫 올림픽인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진종오가 자신의 첫 메달(남자 50m 권총 은)을 목에 걸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6년만에 첫 사격 금메달을 명중시켜 ‘사격 황제’ 로서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김장미가 여자 권총에서 금메달리스트로 올라섰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자 권총 김민정이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2000년대생 오예진(여자 10m 공기권총) 반효진(여자 10m 공기소총) 양지인(여자 25m 권총)이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며 완벽한 세대교체와 함께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사격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죠.
한화그룹 측은 당시 회장사에서 물러나는 이유로는 “장기간 후원으로 사격 발전에 대한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새로운 기업이나 개인에게 기회를 열어줘 사격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는데요.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사격을 지탱하며 사격 발전기금으로만 200억원 이상을 쓴 한화그룹의 진심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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