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앞세워 '뻥튀기' 상장?…증권사 무리수가 개미 잡는다
[편집자주] 기회의 땅이었던 IPO 시장이 흔들린다. '따따상'은 커녕 상장 직후 주가가 하락하는 종목들이 부지기수다. 공모가 뻥튀기, 부실 상장 등 잡음도 이어진다. 가능성 있는 기업의 성장을 위한 자본 조달 통로가 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 역할을 해야 할 공모주 시장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기 전에 개선방안이 시급하다.
IPO(기업공개) 시장이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뜨거워지는 가운데 증권사들의 주관계약 경쟁이 과열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장이 어려운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높게 부르는 등 증권사들이 무리수를 던지는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9일 거래소에 따르면 공모주 열풍이 불었던 2021년 131개의 기업(SPAC 제외)이 증시에 상장됐다. 과거 10년 동안 연평균 상장 기업 숫자는 80개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도 119개의 상장사가 신규로 증시에 입성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58개 기업이 상장에 성공했다.
IPO 시장에서 경쟁률은 수백 대 일은 손쉽게 넘어선다. 조 단위 증거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경쟁률 뻥튀기를 막기 위해 납입능력을 초과할 시 공모주 배정을 금지하는 허수성 청약 규제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2월 상장한 에이피알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663:1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IPO 대어라고 불린 HD현대마린솔루션에는 청약 증거금이 25조원가까이 모였다.
IPO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상장 관련 잡음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이슈,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먹거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증권사 간 IPO 경쟁이 과열된 탓이다.
지난해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IPO를 주관했던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컨트롤러 제조사 파두는 상장 준비과정에서 2023년 매출액 추정치를 1203억원으로 제시해 기업가치 1조5000억원을 인정받으며 코스닥에 상장됐다. 지난해 1분기 매출액이 177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매 분기 300억원 넘는 수익을 내야 했지만, 상장 이후 발표된 실제 매출액은 2분기 5900만원, 3분기 3억2000만원에 그쳤다. 2023년 매출액은 225억원으로 추정치를 81% 하회했다.
뻥튀기 상장 논란 속에서 전날 주가는 공모가인 3만1000원의 반값도 되지 않는 1만3250원에 마감했다. 한때 1만258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날 기준 파두를 보유 중인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5%에 그쳤다. 95%가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같은해 대신증권 주관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시큐레터는 상장 7개월 만에 감사의견 거절로 거래정지된 상태다. 이 회사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도 논란은 이어졌다. 올해 상장을 목표로 했던 더본코리아는 가맹점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상장의 필요성을 시장참여자에게 설득하지 못했다. 더본코리아와 주관사였던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상장을 감행하고자 했으나 결국 상장 예비심사가 연기됐다. 지난 6월20일에는 한국투자증권이 매출액이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 화장품 기업 아이엠포텐과 IPO 주관사계약을 체결하며 무리한 상장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했다.
이에 지난 1일부터 금융투자협회는 주관 증권사가 IPO 절차가 중단되더라도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을 도입했다. 증권사들은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맞게 계약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증권거래소 상장은 매년 꾸준하게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해 캡티비전과 한류 홀딩스가 스팩 합병을 통해 나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2021년에는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고 더블유게임즈의 미국 자회사인 DDI도 나스닥에서 주권 거래를 시작했다.
올해 시장에서 화재가 된 건 네이버의 웹툰 자회사인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나스닥 상장이었다. 기업가치는 26억7000만달러(약 3조6000억원)를 인정 받았다. 지난 6월27일 주당 21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장중 최고 24달러까지 올랐고 그 다음날에는 최고 25.66달러를 기록했다. 최고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4조4000억원이다.
웹툰 엔터테인먼트 외에도 여행 플랫폼 야놀자와 셀트리온그룹의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 역시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카카오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수 년 전부터 나스닥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배송 업체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 경우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지만 현재는 국내 상장으로 선회한 상태다.
국내 기업이 해외 특히 미국 증시로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고 해외 현지에서 영업시장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월하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쿠팡은 2021년3월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면서 7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는데 당시 코스피 기준으로 하면 삼성전자(489조5000억원)와 SK하이닉스(99조7000억원)에 이어 시가총액 3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상장 첫날 주가는 41% 급등하며 시총은 단숨에 100조원을 넘었다.
당시 쿠팡은 매년 수천억원대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었다. 물류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쿠팡이 돈을 끌어올 곳은 미국 뿐이었다. 뉴욕거래소 상장으로 쿠팡은 5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웹툰 엔터테인먼트 역시 적자가 이어지는 중이지만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4400억원의 투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야놀자는 현재 9조~12조원의 기업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이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기업가치라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PER(주가순이익비율)만 놓고 봐도 국내 증시와 미국 증시 간 차이는 확연하다. 선행 PER 기준 코스피는 평균 약 10배, 코스닥은 평균 약 15배 정도지만 S&P500은 20배, 나스닥100은 30배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기업이라도 코스닥보다 나스닥에서 2배 이상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보다 비싼 비용을 치러서라도 미국 증시 진출을 계속 시도한다. 상장 요건의 경우 나스닥이 코스닥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까다롭다. 코스닥은 기술성장기업으로 상장할 경우 적자가 나더라도 자기자본 10억원과 시총 90억원을 충족하면 기술평가 등을 통해 상장할 수 있다.
나스닥은 1부리그에 해당하는 글로벌 셀렉트 마켓에 상장하기 위해선 최근 3회계연도 합계 세전 이익이 1100만달러(15억원)거나 시총 8억5000만달러(1조원) 이상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2부리그인 글로벌 마켓과 3부리그인 캐피탈 마켓은 이보다 요건이 간소하지만 코스닥과 유사한 수준이다.
미국 증시는 최초 상장시 등록비를 납부해야 하고 매년 상장 유지를 위한 수수료도 내야 한다. 상장하는 과정에서 상장자문인을 선임해야 하는 등 국내 상장에 비해 들여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내보다 강력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나 국내에는 없는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사법적 리스크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본질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자본이 모이는 미국 증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동성으로 국내외 주주들의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기업가치가 높아지면서 추가적인 자금 조달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지난 6월28일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예비심사신청서(IPO 청구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에 이어 IPO에 재도전한다. 상장 주관사는 NH투자증권, KB증권,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서울지점이다. 시장에서는 케이뱅크의 기업가치를 5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새벽 배송 플랫폼 업체인 오아시스도 '이커머스 1호 상장'을 두고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다. 오아시스는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함께 IPO를 재추진하며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IPO를 추진했으나 여러 기관투자자가 공모가 희망 범위 하단 이하를 써내면서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오아시스는 최근 11번가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의 이용자 수를 등에 업고 사업 규모를 키워 조 단위 몸값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LG 계열 IT서비스 기업인 LG CNS도 KB증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를 대표 주관사로 선정해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시장에서는 내년 초 상장을 목표로 오는 9월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기업가치는 5~7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2025년에는 DN솔루션즈, 비바리퍼블리카(토스뱅크의 모회사) 등의 상장이 예상된다. 한 증권사의 IPO 업무 담당자는 "여러 대형 딜의 IPO가 예정돼 있어 이와 같은 기대감이 지속된다면 시장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IPO 시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와 한국거래소가 기업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시장 신뢰를 제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 A씨는 지난 6월 거래소가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이노그리드의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 효력을 불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현재의 전반적인 기업 검증 절차에 자정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는 이노그리드가 상장 신청서에 심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대주주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을 누락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거래소는 시장 혼란의 중대성을 감안해 현재 1년으로 정해진 상장예비심사 신청 제한 기간을 3~5년으로 연장하고, 신청서 작성 시 필수 기재 사항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지양하고 중요 사실 누락 시의 제재 내용을 명시하는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의 공모주 시장이 과열 단계에서 정상화 단계로 돌아가는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 B씨는 "공모 희망가 밴드라는 게 증권신고서에 적혀 있는 권장 소비자 가격인 셈인데 희망가 밴드 안에서 공모가가 결정되고 거래된다는 게 시장의 정상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유라클은 공모 희망가 밴드(1만8000~2만1000원)의 상단인 2만1000원에 공모가가 확정됐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밴드(2만4000~2만9000원)의 상단인 2만9000원에, 뱅크웨어글로벌은 밴드(1만6000~1만9000원)의 하단인 1만6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 C씨는 "수요 예측 결과가 공모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일이 속출했는데 최근 과도한 거품이 꺼지면서 오히려 가격 발견 능력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현 기자 hyun15@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천현정 기자 1000chyu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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