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명맥 끊기나…가을학기 개설강좌 '없음'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서울대에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학문적 토대를 제공해온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오는 가을 학기부터 들을 수 없게 됐다.
1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 경제학부는 이번 가을학기에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등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모두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결정은 경제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에서 내려졌다. 교과위는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공급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처음이자 마지막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고(故) 김수행 교수가 2008년 정년퇴임하면서 근근이 이어져 온 마르크스경제학 강의의 명맥이 아예 단절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강의를 개설하지 않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교수진 부족에 있다.
현직 경제학부 교수 38명 가운데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등 3명은 강의를 맡지 못하고 있다.
또 테뉴어(정년 보장)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강의 부담을 줄이면서 강의 규모를 유지하려면 교원 수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학생 관심이 미지근해진 것도 원인이다.
2021년 가을학기 93명에 달했던 정치경제학 입문 수강생은 2022년 봄학기 34명, 2022년 가을학기 61명, 작년 봄학기 29명, 작년 가을학기 25명으로 줄었다. 올해 봄학기에는 30명이 정치경제학 입문 강의를 들었다.
마르크스경제학과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 수는 더 쪼그라들었다.
개설 횟수부터 정치경제학 입문보다 적긴 하지만 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은 2021년 봄학기 14명에서 2022년 봄학기와 작년 봄학기 각각 11명, 작년 가을학기 4명으로 줄었다.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은 2021년 가을학기 13명에서 2022년 가을학기 1명으로 줄었고, 작년에는 강의가 열리지 않았다.
다만 한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학부생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강의를 모두 개설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이다음 학기에는 마르크스경제학 강의가 열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맡아온 강성윤 강사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에서 "유감스러운 점은 계절학기의 경우 학생이 납부한 수업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경제학부의 별도 재정 부담이 없는데도 개설을 불허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학의 압도적 주류와는 사뭇 다른 주제와 접근방식을 취하는 마르크스경제학 분야를 배제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를 갖고 있다"며 "아무쪼록 마르크스경제학 명맥이 서울대에서 완전히 단절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학생사회에서는 학문 다양성 측면에서 강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학생들의 강의 수요가 있는지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작년 가을학기에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수강한 이시헌(28)씨는 "학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은 서울대가 거의 유일하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자 국립대로서 비주류 학문 명맥을 유지할 의무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부 졸업생 윤모(32)씨는 "마르크스경제학은 주류에서 접하기 어려운 비판적 사고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평가했고, 정모(34)씨는 "다양성 측면에서 강의를 유지하면 좋겠지만 학생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한 학생은 에브리타임에서 "정규학기는 그렇다 쳐도 학생들이 학비를 다 대는 계절학기까지 개설을 막는 것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는 김수행 교수가 1989년 부임한 이후 개설됐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본론을 완역한 권위자다.
2008년 김 교수가 퇴임한 이후 사회과학대학 대학원생들이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채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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