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백신 불평등, 사망 늘려…"과학계 식민주의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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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번 주 표지로 색이 다른 여러 개의 손이 지구를 받치고 있는 이미지를 실었다.
연구팀은 "유럽 식민지배의 대부분을 뒷받침했던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집착은 과학계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백신이 공평하고 시기적절하게 남반구 국가에 보급됐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를 적어도 절반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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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번 주 표지로 색이 다른 여러 개의 손이 지구를 받치고 있는 이미지를 실었다. 표지 중앙에는 '오래된 틀린 것들을 바로잡는다'는 문구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번 호 사이언스는 과학계에 잔존한 '식민지주의'를 타파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조명했다.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가 무형의 권력을 바탕으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취하는 다양한 상황을 조명했다.
마두카르 파이 캐나다 맥길대 교수와 세예 아빔볼라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편집위원회의 인종적 다양성 부족, 저자의 불균형, 영어권 선호 경향 등이 과학 연구와 관련한 국제 형평성이나 정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기고문을 8일(현지시간)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또 현재 과학 연구에 대해 "대기업에 유리한 지적재산권(IP) 체계가 조성돼 있다"며 "이러한 불공평성은 과학적 결실에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와 연관돼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과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누구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중 이뤄진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 플랫폼을 예로 들었다. 연구팀은 "전 세계가 이같은 백신 연구 성과를 축하하는 가운데, 이러한 기술에 대한 공공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백신이 전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적시에 제공되지 못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북반구 국가들은 제약 회사로부터 로비를 받고 백신을 마음껏 구매했지만 일부 남반구 국가들은 백신이 정말로 필요했던 짧은 기간에만 공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유럽 식민지배의 대부분을 뒷받침했던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집착은 과학계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며 "백신이 공평하고 시기적절하게 남반구 국가에 보급됐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를 적어도 절반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신 기술을 아프리카에 도입하려는 노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mRNA 백신 플랫폼 대부분은 북반구와 대형제약사(빅파마)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백신에 대한 개발이 저해되고 있다"며 "권력의 역학 관계는 결국 형평성 보장을 목표로 하는 팬데믹 협약조차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에선 경제적인 이유로 백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제약사 길리어드가 개발한 인간면역결핍(HIV) 바이러스 백신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우간다에서 여성의 HIV 감염을 100% 예방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4만2000달러(약 5785만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으로 정작 이 지역 여성들은 백신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구팀은 "과학적 '기적'이 이를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 소녀와 여성에게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백신) 옹호자들이 있다"며 "흑인과 갈색 인종은 임상시험에 참여할 자격은 있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치료제에 접근할 자격은 없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모든 사람이 과학의 결실을 누릴 권리가 실현되려면 과학이 더 이상 이익과 엘리트만을 위한 기업이 되어선 안 된다"며 "문제상황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 과학이 수행되는 방식에 대한 의제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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