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웹툰 모르던 美…댓글 1만개 달릴 때 '이거 된다' 했죠"
"'무료웹툰' 생소해 처음엔 사기 의심받기도…직접 작가들 만나 설득"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우리가 웹툰은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면서, 작가한테는 고료를 지급하잖아요. 처음에 북미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기 같다'고 의심받았어요. 여기서는 네이버도, 웹툰도 너무 생소하던 시절이니까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웹툰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만난 이신옥(39) 북미 웹툰 총괄 리더는 미국 콘텐츠 시장에서 아무도 웹툰에 대해 모르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네이버웹툰은 2014년 7월 처음으로 영어 서비스에 나섰고, 2020년 미국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이후 북미 법인 웹툰엔터가 네이버웹툰의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웹툰엔터는 지금이야 미국 나스닥 상장사지만,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북미 시장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이 리더는 웹툰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업과 창작자, 독자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북미에서 서비스 초반에 1등에게는 3만 달러를 주는 공모전을 열었는데, 상금이 크다 보니 오히려 더 큰 의심을 샀다. 이 오해를 푸는 게 주 업무였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심지어는 작가들을 LA로 초청했는데, '블루체어'를 그린 셴(Shen) 작가의 경우 부모님이 '이상한 회사 아니냐?'고 걱정하시며 확인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털어놨다.
'웹툰 불모지'라는 북미 시장에 발을 디딘 이 리더는 첫 2년 반 동안 창작자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코믹콘(만화 행사)에 참여했다"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믿을만한 곳이라고 소문이 났고, 현지 창작자가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면서부터는 창작자들이 우리를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그다음 2년 반은 현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시간이었다.
'치즈인더트랩', '언터처블' 등 한국의 인기작을 번역해 들여오고, 이와 동시에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발굴해 소개했다.
이 리더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현지 웹툰 '언오디너리'에 댓글 1만개가 달렸던 순간을 언급했다.
그는 "처음에는 웹툰에 댓글 몇백개만 달려도 손뼉을 쳤는데, 어느 순간 댓글이 딱 1만개가 달렸다"며 "그때 '어, 이거 뭔가 될 것 같다'고 느끼자마자 그다음 주에는 댓글이 2만개가 달렸고 '빵' 터지더라. 그때 웹툰이 여기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구나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웹툰엔터 사무실 규모가 10배로 커졌고, 먼저 협업을 제안하는 회사도 늘었다. '배트맨' 시리즈로 유명한 DC, 미국의 유명 출판사 다크호스 코믹스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게임 개발사 위저즈오브더코스트와 '브리 앤드 더 버로우드 블레이드'를 웹툰으로 만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몰라도 북미 대중에게는 여전히 서브컬처(하위문화)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엔터 산업에서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최근 출판업계에서 웹툰 인기 장르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그럴 때면 우리가 콘텐츠 트렌드의 최전방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로맨스판타지, 게임판타지 장르도 북미 독자들이 좋아하지만, 이곳 특유의 선호 장르도 따로 있다고 귀띔했다.
이 리더는 "북미에서는 슈퍼히어로, 뱀파이어, 마피아 소재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며 "현지 작품의 경우 그림체도 각양각색이고 캐릭터의 인종도, 정체성도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이 리더는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했지만, 어릴 적부터 만화를 사랑해온 '웹툰 덕후'다.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사업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선뜻 손을 들게 된 것도 웹툰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업 관련 질문에는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말했지만, 작가와 작품 이야기만 나오면 열띤 목소리로 해당 웹툰을 소개했다.
그는 "작가님들이 오실 때마다 자기 캐릭터랑 사인을 남기고 가는 화이트보드 기둥이 있다. 평소엔 이 앞에 노트북을 펴두고 일하곤 한다"고 말했다.
또 작가들에게 익숙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코믹콘에 참여할 때마다 턱수염을 기른다고 했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작가님들이나 파트너사 관계자들은 수염을 기른 제 얼굴에 익숙하시거든요. 헷갈리실까 봐 코믹콘에 갈 때는 면도를 잘 하지 않아요."
나스닥 상장 소감을 묻는 말에 그는 상장 당일 현지 발굴 작품들이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커다랗게 내걸렸던 순간의 감동을 떠올렸다.
"타임스스퀘어에서 게릴라 행사를 했거든요. 전광판이 초록색으로 뒤덮이고 그다음에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공들인 작품들이 지나가는데…. 그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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