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 먹다 나이프가 천장에..." 동아시아서 난기류 빈발 왜?

장수현 2024. 8.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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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와 함께 증가하는 난기류
'제트기류' 동아시아 특히 가능성 높아
곳곳서 음료 화상·골절 등 기내 사고
기내 서비스부터 변화 나선 항공업계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하던 대한항공 KE197편이 기내식 중 난기류를 겪으며 기내가 난장판이 됐다. 황씨 제공

# 지난 4일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황모(29)씨는 출발 1시간 만에 겁에 질렸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급강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엉덩이가 공중에 뜨고, 먹던 기내식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쇠로 된 포크와 나이프가 솟구쳤다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비명이 들렸다. 황씨는 "잠깐 죽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난장판 된 기내를 치우느라 승무원들이 고생하셨다"고 전했다.

기후변화로 난기류가 증가하면서 비행길을 위협하는 일도 늘고 있다. 기내식이나 짐이 쏟아지는 건 물론, 부상·사망 사고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승객 안전 확보에 비상이 걸린 항공사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기내 문화는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특히 심한 난기류

지난달 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향하던 에어유로파항공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자 한 승객이 짐칸 위에 상반신이 끼었다. X 계정 @alvinfoo

지난달 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향하던 에어유로파항공 여객기는 난기류를 만나 브라질의 나탈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당시 기체가 심각하게 흔들리면서 승객 30여 명이 골절을 비롯한 경상을 입고 인근 지역 병원으로 이송됐다.

탑승했던 승객들이 엑스(X)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천장 곳곳이 뜯겨나가고 좌석 여러 개가 망가졌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던 한 승객의 몸이 솟구쳐 짐칸 위에 낀 모습도 포착됐다. 승객들은 "죽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 비행기가 급강하하면서 안전벨트를 안 한 사람들이 떠올라 천장에 부딪혔다"고 전했다.

앞서 5월 21일엔 영국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극심한 난기류를 마주쳐 2km 가까이 급강하했다. 이후 비행기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70대 남성 한 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다. 같은 달 26일엔 카타르에서 아일랜드로 가던 카타르항공 소속 비행기 승객 12명이 난기류로 다쳤다.

난기류 예측 전문 웹사이트 '터블리'가 지난해 전 세계 15만 개 비행 경로를 분석해 가장 난기류가 심한 경로 10개를 공개했다. turbli 웹사이트 캡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특히 난기류가 심한 편이다. 지난해 난기류 예측 웹사이트 '터블리'가 전 세계 15만 개 비행경로를 분석한 결과 난기류가 심한 경로 1~10개 중 6개가 모두 일본과 중국의 국내선일 정도였다.

동북아시아의 난기류는 '제트기류' 때문이다. 제트기류는 북반구 중위도 8~10㎞ 상공에서 부는 강한 편서풍을 의미한다. 제트기류 근처에선 난기류, 특히 맑은 하늘에서 생기는 '청천난류(CAT·Clear Air Turbulence)'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전혜영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제트기류가 강한 곳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라며 "청천난류는 구름 발달이나 레이더 에코 같은 사전 징후 없이 매우 짧은 시간에 발생해 다른 난류들보다도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난기류 늘어날 가능성 높지만…탐지 능력은 부족

지난해 10월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계류장에 주기된 여객기들. 하상윤 기자

비행길을 방해하는 난기류는 앞으로 더 자주, 심하게 올 가능성이 높다. 김정훈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지난해 7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 '기후변화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상위 수준 항공 난기류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에 따르면 난기류는 1970~2014년에 비해 2056~2100년 약 2배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난기류 증가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 대기층은 고도 10㎞를 경계로 위아래로 나뉘는데, 위쪽이 성층권, 아래는 대류권으로 구분한다. 지구 온난화가 심화하면 아래쪽의 대류권 기온이 높아지면서 성층권과의 기온 격차가 커지고 그 사이의 제트기류가 강화돼 난기류도 잦아지는 원리다.

문제는 현재의 예보 시스템만으로 난기류 예측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예보 모델로는 최소 8km 간격으로 예보를 생산하기 때문에 30~50m 여객기 길이에 딱 맞는 예보를 할 수가 없다. 특히 동아시아에 잦은 청천난류는 맑은 날씨에 발생하다 보니 수분이나 습도 차로 난기류를 파악하는 항공기 기상 레이더로는 탐지가 어렵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예보 시스템에 잡히면 관계 기관들과 협의해 경로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난기류를 피해 가지만, 청천난류의 경우 현 시스템으론 잡아내기 어렵다"며 "일단 맞닥뜨리면 뚫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컵라면 중단' 대응 나선 항공업계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이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항공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난기류로 부상 위험이 커지면서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 6월 미국인 타자나 루이스는 플로리다주(州) 올랜도에서 코네티컷주 하트퍼드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난기류 도중 뜨거운 차를 받아 화상을 입었다며 제트블루 항공사를 상대로 150만 달러(약 20억7,000만 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지난해 8월 워싱턴DC에서 뉴올리언스로 가는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에서 난기류 때문에 발목이 부러졌다며 항공사를 고소한 사건도 있었다.

항공사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내 서비스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오는 15일부터 장거리 노선에서 제공하던 일반석 컵라면 서비스를 중단하고 대신 핫도그, 피자 등의 간식을 제공한다. 음식이나 음료에 사용되는 온수는 기존보다 온도를 낮출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부터 중장거리 전 노선을 대상으로 난기류 발생 시 기장이 직접 안내방송을 실시하도록 하고 착륙준비 및 안전 점검 시기를 앞당겼다.

근본적으로는 난기류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예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게 필수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난기류 인식 플랫폼을 운영하며 21개 가입 항공사로부터 난기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난기류 빅데이터'를 구축해 실시간 승객 안전 확보에 활용하고 난기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걸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항공기상청도 난기류 예보 능력 향상을 위해 차세대 항공교통 지원 항공기상 기술개발 사업인 '나래웨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전 교수는 "난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가 각각 예측하는 난류 발생 가능성을 계산한 뒤, 이를 종합해 확률로 나타내는 '확률형 예보'를 개발 중"이라며 "2026년 새 예보 시스템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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