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대부분 '과충전' 자체 방지 못해
지하설치 충전기·배터리 제조사 등 화재방지 정보 '깜깜이'
정부 12일 대책회의 열고 내달 종합대책…"조처 서둘러야"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공동주택에 설치된 충전기 대부분이 과충전을 자체적으로 막을 수 없는 완속충전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소방력 투입이 어려운 지하에서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환경부는 지하에 설치된 충전기 수를 이제서야 파악 중이다.
최근 화재로 배터리 제조사 등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더 공개하라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정부도 관련제도 정비에 나섰다.
다만 전기차 성능과 안전에 핵심인 배터리 관련 정보는 '영업비밀'에 해당할 수 있어 전기차 제조사가 이에 따를지 미지수다.
정부는 내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동주택 충전기 대부분 '과충전 방지 어려운' 완속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6월 기준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24만5천435개 중 완속충전기는 24만1천349개로 98.3%를 차지했다.
다른 주거지역인 근린생활시설도 전체 5천807개 충전기 중 70.5%인 4천93개가 완속충전기로, 급속충전기(1천714개)보다 훨씬 많다.
현재 설치된 충전기 중 급속충전기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장착돼 전기차 배터리 충전상태 정보(SoC)를 차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건네받아 충전기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지만, 완속충전기는 거의 PLC 모뎀이 없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PLC 모뎀을 단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에 모뎀 가격에 상응하는 40만원을 추가 지원하고, 이에 PLC 모뎀 장착 완속충전기들이 출시되면서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는 완속충전기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결국 현재로선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설치된 충전기 대부분과 근린생활시설 충전기 70%는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막지 못하는 기기인 셈이다.
이용자가 많은 교육문화시설(완속충전기 비율 80.6%)이나 상업시설(71.0%)도 완속충전기가 급속충전기보다 훨씬 많다.
전기차와 통신 가능해지면 과충전 '이중방지'
물론 전기차 BMS에도 과충전 방지기능이 있어 충전기에 PLC 모뎀이 없다고 꼭 과충전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PLC 모뎀 장착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전기차 BMS가 정상이어서 배터리 충전상태를 정상적으로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충전기에 기능이 없어도 BMS만으로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고, BMS가 오작동 중이라면 이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아야 하는 충전기 과충전 방지기능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는 BMS에서 배터리 충전상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아야 과충전을 막을 수 있다.
다만 환경부는 PLC 모뎀 장착 충전기가 과충전 '이중 방지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가 충전된 뒤 운행하지 않았더라도 방전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때 충전기가 꽂힌 상태라면 차에서 충전기에 추가 충전을 요구하고 충전기가 이에 응하면 과충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는 이런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PLC 모뎀이 장착된 충전기로 배터리 충전상태 정보뿐 아니라, 충전 시 온도나 배터리 내구수명(SoH) 등도 수집해 제조사와 차 소유자 등에 제공하는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한 '통합관리체계'를 만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배터리 정보 공개" 목소리 크지만…업계는 영업비밀 침해 우려
전기차 화재 예방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BMS 데이터를 지금보다 더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BMS'는 전기차 배터리를 관리하고 차가 배터리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기차 성능과 안전수준을 결정하는 핵심기술로, 관련 정보 공개는 제조사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에 환경부의 BMS 데이터 공유 요청에 KG모빌리티와 같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제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최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차량엔 세계 10위권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중국 1위 배터리업체 CATL의 배터리가 장착돼있었다고 알려졌다가 추후 바로잡혔다. 국내에 수입된 벤츠 차 중엔 이번에 불이 난 차종에만 파라시스사 배터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환경부는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 인증 시 제조사로부터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인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했는지 등 '종류'는 제출받지만, 배터리 제조사까지는 제출받지 않는다.
정부도 전기차별로 어느 제조사 배터리가 실렸는지 모르는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전기차 제원 안내에 배터리 제조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중국은 2018년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이미 제조사 정보를 공개한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규정을 마련한 상태다. 모든 전기차 배터리와 산업용 배터리가 개별 식별이 가능한 고유의 전자기록(배터리 여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EU 계획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도 배터리 정보를 반드시 공개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다만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의 납품처는 통상 영업비밀로 여겨진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강제하면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수입차 제조사 문제 제기로 통상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토부는 13일 자동차 제조사들을 만나 입장을 듣는다.
작년 '지하 3층까지만' 충전기 설치토록…현황 파악은 '아직'
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진화가 어려운 지하엔 충전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전기차 충전 기반 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을 통해 새로 건축허가를 받는 건물은 지하 3층까지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하기로 하고 작년 11월 '한국전기설비규정'을 개정해 이를 시행했다.
다만 지하 3층까지는 충전기 설치를 허용한 방안을 두고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발표 때부터 제기됐다.
실제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제정한 민간 방재기술기준인 '한국화재안전기준'엔 '전기차 충전설비는 지하에 설치하지 않아야 하며, 부득이 지하에 설치하는 경우 지하 2층 이내에 설치하고, 건물 입구나 경사로 근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있다.
교육부가 한국화재소방학회와 함께 올해 마련한 '교육시설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및 유지관리 안내서'에도 전기차 충전시설은 '지하가 아닌 장소에 설치'를 권장하고, 지하에 설치할 경우 '지하 2층 이내에서 연기와 가연성 가스 배출이 용이한 바깥공기와 접하는 위치'에 설치하라고 규정돼있다.
작년 정부 방안에는 지하에 충전기를 설치할 경우 내화구조를 갖추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었다.
다만 '지하 3층까지만 설치' 등은 새로 짓는 건물에만 적용돼 이미 설치된 충전기의 화재 예방 대책은 못 되는 문제가 있다.
환경부는 현재 지하에 설치된 충전기가 몇 기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는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주소만 파악하고 있고 층수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충전사업자별로 충전기가 설치된 층수를 조사 중으로, 최대한 이른 시일에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기차 화재 증가세…내달 초 종합대책 발표
정부는 12일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여하는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내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 2022년 43건, 지난해 72건으로 증가세다.
최근 3년간 발생한 139건의 전기차 화재 가운데 운행 중에 발생한 건은 68건이었다. 36건은 주차 중에, 26건은 충전 중에 발생했다.
임이자 의원은 "그간 전기차를 보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 안전 대책은 뒷전이었다"며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차 보급에 제동이 걸리지 않게 전기차와 충전시설 화재 예방 조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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