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폐암 덩어리만 빛으로 표시 ‘싹둑’…20년 연구로 세계 첫 이중 형광 조영제 개발

염현아 기자 2024. 8.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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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美 하버드 의대 최학수 교수와 공동 연구
“절제수술에서 폐 정상 조직 최대한 살려야
형광 조영제로 폐구역들 경계 정확히 구분”
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지난 6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고대구로병원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폐 구조와 암을 형광으로 보여주는 조영제 덕분에 정상 조직을 건드리지 않고 암 부위만 잘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대구로병원

폐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 질환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폐암 발생자 수는 3만 1616명으로, 갑상선암(3만 5303명), 대장암(3만 2751명)에 이어 전체 암종 중 3위를 차지했다. 폐암은 암이 발생한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로 치료한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상당수 정상 조직이 함께 제거되는 문제가 있다.

폐는 한번 잘라내면 재생되지 않고 잘라낸 만큼 기능이 떨어진다. 암이 생긴 부분이 1~2㎝로 작아도 그 부분만 잘라내지 못하고 주변의 정상 조직을 많이 제거해,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 폐암 수술은 암이 발생한 폐엽 전체를 잘라냈지만, 최근에는 폐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암이 발생한 폐구역만 잘라내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 폐는 오른쪽이 폐엽 3개, 왼쪽은 폐엽2개로 구성된다. 폐엽은 각각 2~6개의 폐구역으로 나뉜다.

국내 연구진이 폐엽과 폐구역, 암의 위치를 빛으로 정확하게 구분하는 특수 조영제를 개발했다. 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최학수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와 함께 암세포에 붙어 형광을 내는 이중 형광 조영제를 개발했다. 폐의 구조와 암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면 정상 조직은 두고 암만 잘라낼 수 있다. 말하자면 경찰이 동네를 골목까지 다 보면서 숨어있는 범인에 조명을 비추는 것과 같다.

김 교수는 형광 조영제 연구에 20년을 쏟았다. 5년 전부터는 최 교수팀과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김 교수는 “전임상 동물실험을 마치고,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며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한미혁신성과창출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선정돼 오는 2025년까지 총 35억원을 지원받는다”고 밝혔다. 지난 6일 고대구로병원에서 김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최학수 하버드 의대 교수./고대구로병원

–기존 수술법의 한계는 무엇인가.

“수술로 암이 전부 사라졌다고 해도 정상 세포를 같이 떼어냈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은 대부분 낮은 편이다. 고령 환자일수록 암의 크기가 작아서 그만큼 정상 세포도 많이 덜어낼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는 완치 후에도 숨이 너무 차서 거동이 어려워지고, 일반 생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도 환자 몸 속에 조영제를 주입해 암이 있는 대략적인 위치와 폐엽과 폐구역이 나뉜 영상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하고 정밀도가 매우 떨어진다. 암은 완벽하게 떼어내면서 정상 조직은 최대한 살리려면, 의사가 수술에서 정밀한 구획 구분과 암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

–승인받은 형광 조영제는 없나.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승인한 게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구역 구분의 정밀도가 비교적 낮고, 화학적인 불안정성이 한계로 남아있다. 암이 폐 표면에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1㎝만 깊이 들어가 있어도 암을 보기가 힘들다. 현재 승인된 조영제는 침투력이 낮아 정밀도가 떨어진다. 또 파장대가 맞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들 조영제는 약 500~60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빛 파장대에서 볼 수 있는데, 실제 임상에서 쓰는 기구들은 800㎚ 파장에 맞춰져 있다. 그들이 개발한 영상 시스템과 기구를 사용해야만 볼 수 있어 시장성이 매우 낮다.”

–이중 형광 조영제는 어떤 원리인가.

“이중 형광 조영제는 정맥으로 주사하는 것까지는 기존 조영제와 같다. 이번 조영제는 암 세포를 찾아가는 바이오마커(생체 지표)가 달려 있다. 조영제가 몸 속에서 암 세포에 붙으면 형광을 낸다. 의사에게 암이 있는 부위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 쓰는 기구들의 파장인 800㎚에서 관찰할 수 있다. 또한 폐엽을 잘게 나눠 정확히 어떤 폐구역을 잘라낼 것인지 다른 색깔의 700㎚ 빛으로 구분해준다. 기존에는 한 번 주입할 때 최대 5분간 영상을 볼 수 있었지만, 우리는 30분으로 늘렸다. 수술 도중 조영제를 두세 번 반복 주입해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 의사가 영상을 보며 여유 있게 정밀 수술을 할 수 있다.”

–전임상시험 결과가 궁금하다.

“고대구로병원 동물실험실에서 토끼로 실험했다. 동물실험은 일반적으로 생쥐로 하는데, 폐를 정교하게 절제하려면 더 큰 동물이 필요했다. 또한 생쥐에 암세포를 주입해도 암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토끼는 폐에 암세포를 넣으면 2주 만에 암이 생겨 바로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형광 조영제를 정맥에 주입한 뒤 폐엽과 폐구역, 암 부위 등을 30분 이상 볼 수 있었다. 게다가 4시간 안에 조영제 85% 이상이 토끼 신장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는 것도 확인했다. 물리·화학적 안정성과 수술 효용성을 모두 입증한 것이다.”

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 최학수 하버드 의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이중 형광영상을 활용한 폐암 정밀 수술법'. 800㎚ 파장의 cRGD-ZW800-PEG, 700㎚ 파장의 ZW700-1C 조영제로 폐암과 폐구역 경계면을 확인할 수 있다./고대구로병원

–실제 수술에 적용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남았나

“이제 겨우 전임상을 마쳤고,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규정상 본 임상시험에 들어가려면 회사가 있어야 한다. 지금 최학수 교수와 공동 투자해 내년 중순쯤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후 고대구로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른 암 수술에도 적용할 수 있나

“임상시험에서 안정성만 확인된다면 가능할 것 같다. 이미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형광 조영제는 폐암, 난소암, 유방암에까지 활용할 수 있다.”

–폐암 정밀 수술법 연구에만 20년을 쏟았다.

“흉부외과 의사로 산 게 그 정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솔직히 형광 조영제 개발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폐암은 의사가 수술하기도 힘들고 환자 예후(질병 결과)도 너무 안 좋은데 관련 연구를 아무도 안 하니 그냥 빨리 개발해버리자 하고 멋 모르고 시작한 게 이렇게 됐다. 연구 비용도 이렇게 많이 들 줄 몰랐고, 회사가 있어야만 본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는 식약처 규정도 몰랐다. 하지만 시작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제대로 알았더라면 더 빨리 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크다.”

–현재 이외에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폐암 수술 후에 통증을 줄이기 위한 기술을 최학수 교수팀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 또 고령 환자의 경우 초기인데도 수술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부담을 최소화하고 부작용도 줄인 내시경 기술도 개발 중이다.”

김현구 고대구로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 최학수 하버드 의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 중인 '이중 형광영상을 활용한 폐암 정밀 수술법'./고대구로병원

참고 자료

International Journal of Surgery(2024), DOI: https://doi.org/10.1097/JS9.000000000000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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