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수출 증가?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자본시장 이야기]
수출이 호조다. 지난 6월까지 9개월째 증가세다.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 등의 수출이 꾸준히 늘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무역수지도 13개월 연속 흑자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속적인 달러 강세(원화 약세)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미국 달러 가치가 매우 높다. 한국 원화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 엔화 등 다른 수많은 국가들의 통화와 비교해도 그렇다. 비싼 달러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미국의 높은 이자율이다. 높은 이자를 벌려면 고금리 국가에 투자해야 하고, 투자하려면 그 나라 통화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고금리 국가의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그 가치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 교과서는 ‘우리나라 통화’가 미국 달러 대비 약세인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친다. 기본적으로 옳지만, 세상은 교과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신현송 교수는 강달러가 글로벌 수출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논문을 학계 최고 권위지에 실었다. 우선 수출과 환율에 대해 교과서가 알려주는 내용부터 차근차근 짚어보도록 하자.
■ 교과서 “원화 약세는 수출에 유리”
당신은 ‘이과뉘’란 로션을 미국으로 수출해 1개당 12달러에 팔고 있다. 현재 환율은 1달러에 1000원. 로션 하나를 팔면 원화로 1만2000원을 번다. 이제 원화 대비 달러 가치(환율)가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랐다고 치자(달러 강세, 원화 약세). 이제 당신이 1만2000원을 벌려면 이과뉘 로션의 가격을 10달러로 내려 팔아도 된다. 가격을 내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려고 할 것이다. 수출액(매출)은 1개당 달러 가격과 수출 물량(판매량)의 곱이다. 그러니 ‘달러 가격을 내린 정도보다 판매량 증가가 더 크다면’ 수출액은 늘어날 것이다(따옴표로 묶은 이유는 바로 뒤에 설명한다). 판매량 증가는 시장점유율이 그만큼 늘었다는 말도 된다. 가격을 내려 점유율을 높인 것이다. 이와 달리, 로션의 달러 가격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로션 한 개를 팔면, 1만2000원이 아니라 1만4400원(=12달러×1200원)을 벌게 된다. 환율 덕분에 원화 환산 이익이 2400원 늘어난 것이다.
당신은 로션 가격을 낮춰 시장점유율을 높이거나 혹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큰 (원화 환산) 이윤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달러 강세(원화 약세)는 수출에 유리하다. 그런데 두 전략 중 어느 쪽의 매출액이 더 클까?
답은 이과뉘 로션의 판매량이 얼마나 가격에 민감한지에 달려 있다. 앞 문단에서 괄호로 묶었던 부분을 다시 알아보자. ‘달러 가격을 내린 정도보다 판매량 증가가 더 크다면’ 이 업체의 수출은 늘어난다. 그러나 가격을 낮춰도 판매량이 늘지 않는다면 ‘환율의 수출 증대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인들이 로션을 싼 가격 때문에 산다면 값을 낮추는 쪽이 낫다. 그러나 주 고객들이 로션의 품질과 브랜드에 반해 어느 정도 높은 가격은 감수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면, 가격인하는 좋은 전략이 아니다.
10여 년 전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실제로 겪었던 사례이기도 하다.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덕분에 도요타는 미국 현지에서 두 전략을 모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판매가를 낮춰 시장점유율을 높여도 되고, 가격 유지로 더 큰 엔화 환산 이익을 누릴 수도 있었다. 경영진의 결정은 후자였다. 도요타는 ‘가격보다 브랜드에 충성심을 보이는 고객이 많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경제개발 당시, 한국의 수출품은 싼 가격을 무기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의 갤럭시 폰이나 엘지 TV를 싼 맛에 쓰는 소비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 강달러가 오히려 수출 줄인다?
그러나 원화 약세가 수출 증대에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강달러가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이 늘고 대신 (국내) 물가는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과거 생각했던 프레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 자본시장에 주는 영향은 장단점이 있고 영향받는 사람도 다르다.”
앞서 언급한 신현송 교수의 논문은 이를 실증적 증거와 함께 보여준다. 강달러가 수출에 필요한 자금 흐름을 방해하는 ‘금융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수출량의 감소를 가져왔다는 내용이다. 00쪽 〈그림 1〉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검은색 실선은 ‘미국 달러 인덱스(DXY:다른 주요 통화에 대비한 미국 달러의 평균적 가치)’로, 높은 값일수록 미국 달러가 강세라는 의미다. 파란색 실선은 글로벌 GDP 대비 수출 물량이다. 두 선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패턴이 꽤 명확하게 보인다. 강달러가 대체로 수출에 해롭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화폐가 달러 대비 약세일수록 수출에 유리하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그림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논문은 멕시코 회사들의 수출 실적, 그리고 이 업체들과 거래하는 은행들의 달러 조달 상황을 살핀다. 은행들이 수출업체들에 달러를 빌려주기(이를 ‘무역신용’이라고 부르는데 뒤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때문에 무역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이 은행들은 미국 달러를 주로 MMF라 불리는 단기자금 시장에서 조달해 수출업체에 빌려준다. 그러나 논문에 따르면, 달러 강세로 인해 은행들이 MMF 시장에서 달러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멕시코 수출업체들은 은행들로부터 달러 자금(무역신용)을 충분히 제때 공급받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은행(MMF 시장 의존도가 높은)을 통해 수출 업무를 진행하는 멕시코 기업들에서, 달러가 강해질수록 수출이 유의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멕시코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림 2〉는, 은행들의 ‘무역 관련 신용공급 변동률(남색 점선, BIS가 9개국 중앙은행을 통해 얻은 데이터)’을 ‘미국 달러 인덱스(검은 실선)’와 함께 보여준다. 두 선들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달러가 강하면 은행들이 수출업체에 대한 무역신용 공급을 줄인다는 의미다.
이제 신용공급 등 ‘금융 채널’이 무엇인지 살펴볼 차례다. 국경을 넘는 거래인 수출입은 국내 거래에 비해 훨씬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수출입을 뒷받침하는 금융, 즉 무역금융(trade finance)이 독립적인 분야로 발전해왔다. 우선, 무역금융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 무역금융과 달러의 필요성
수입사 IM이 바다 건너 외국의 수출업자 EX로부터 물건을 구입한다고 치자. 주문을 받은 EX는 재고를 풀거나 해당 상품을 제작해 배에 실어 보낸다. 오랜 항해 끝에 IM 소재 국가의 항만에 도착한 상품은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친 뒤 IM에 전달된다. 공장 출하 후 선적까지 20여 일, 항구에 도착해 최종적으로 수입업자에게 이송되는 데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수출대금은 배송이 완료되고 90일 이내에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거래 완료까지 적어도 2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볼 수 있다.
거래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불확실성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EX가 물건을 선적했다고 거짓말해놓고 대금만 받아 ‘튀어’버리면 어쩌지? 선적한 화물이 풍랑을 만나 바닷속으로 침몰해버리면? 화물을 보냈는데 IM이 대금을 결제하지 않고 꿀꺽해버릴 수도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그 나라까지 찾아가 ‘내 돈 내놓으라’고 하기엔 비용이 너무 크다. 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런데, 절대우위론이나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온 18세기 후반엔 어땠을까? 복잡한 무역금융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났다. 수입업자 측 은행이 수출업자 측 은행을 통해 자금 결제를 보증해주는 것이 무역금융의 핵심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IM은 EX에게 자신이 틀림없이 대금을 결제할 것이라고 증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특정 은행을 선택해 신용장(L/C) 발부를 요청한다. 신용장은 IM의 대금결제를 은행이 보증한다는 약속이다. 이 수출업자 측 은행은 신용장을 EX(정확히는 EX 측의 은행)에 보낸다. EX는 신용장의 보증을 믿고 상품을 출하, 선적한 뒤 ‘화물을 보냈다’는 증명자료(선하증권)를 IM(의 은행)에 보낸다. IM 측이 선하증권을 받는 그 순간부터 운송 중인 화물의 주인은 EX에서 IM으로 바뀐다(타이틀 이전). 물건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화물이 운송 중이라 하더라도 대금을 결제해야 한다. IM은 물건이 도착하면 90일 이내에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증서인 은행인수어음(B/A)을 발행해 EX에게 보낸다. EX는 B/A를 자신의 거래은행(수출업자 측 은행)에 팔아 수출대금을 챙긴다. 나중에 받을 돈을 미리 받는 셈이니 금액은 다소 할인될 것이다. 은행은 이렇게 사들인 B/A를 단기자금 시장에 팔아 현금화한다. 이런 과정에서 B/A를 사들여 보유하게 된 누군가는 이 증서를 IM에 넘기면 대금을 결제받을 수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B/A의 흐름은 일반적인 어음할인 과정과 다르지 않다. A가 B로부터 100일 뒤 100원을 받기로 했다고 치자. 현금이 급한 A는 ‘지금’ C로부터 95원을 받는다. 그 대신 C는 일정 기간 이후 B로부터 100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복잡한 과정의 어디에나 신용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EX 입장에선 수출대금이 결제되어야 물건을 제작·출고·운송하는 데 들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데, 대금결제까지 시간 간격(래그)이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수출업자인 EX는 은행으로부터 미리 운전자금을 대출받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은행을 통한 원활한 자금흐름이 수출입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실증적으로 증명되었다.
■ 달러 조달 창구 늘려야
수출에서 금융 채널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달러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수출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선 은행들이 해외에 있는 지점들을 통해 달러를 차입(해외은행 차입금)하는 것이 주된 달러 조달 창구다. 달러를 빌려주는(달러 중개) 업체는 제이피모건, 시티 등 상업은행이나 헤지펀드 등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들이다. 유럽권 은행들도 달러 중개 비즈니스의 주요 주체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의 달러 중개 비즈니스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형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부채 증가 등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부채비율, 자본건전성 등 규제들이 강화되었다. 이 대형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조달하는 단기자금 시장(MMF)에 대한 규제 역시 은행들, 특히 비미국계 은행들의 단기자금 조달을 위축시켰다. 결과는 달러화 자금 공급의 축소였다. 글로벌 은행들의 달러 공급이 감소하자 국내 은행들의 달러 해외 차입금 규모도 축소되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승호·김한수 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의 ‘해외은행 차입금’ 잔액이 2007년 말 1629억 달러에서 2019년 말엔 1295억 달러로 줄었다. 해외 은행 차입이 전체 대외 금융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에서 11%로 축소되었다. 안정적인 달러 공급을 위해 달러 조달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를 들어 한국 내에서 외화표시 채권(달러로 빌려 달러로 갚는)을 발행해 직접적으로 달러를 조달하는 경우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달러 조달 창구를 늘리기 위해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지수는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 국채를 포함하고 있지만 한국 국채는 제외되어 있다. 이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의 자금 규모는 무려 2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블룸버그를 인용한 〈이투데이〉 보도(4월1일)에 따르면, 한국 국채가 WGBI에 편입되면 한국채에 대한 안정적 중장기 투자가 늘어나면서 80조원 넘는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어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수출 호조’는, 달러를 잘 벌어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수출로 확보된 달러는 ‘금융 채널’의 작동을 원활하게 만들어 수출을 돕는다. 수출과 달러 확보가 서로를 돕는 선순환이다. 달러 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강달러는 수출을 제약하는 장애물로 나타날 수 있다.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달러 유동성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산업별로 다르고, 때론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과 정반대 효과를 나타낸다면 더욱더 그렇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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