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놀라서 쓰라는 대로 썼어요” [세상에 이런 법이]
학교폭력 사안 상담을 많이 하게 된다. 그중 일부는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이거나 사실은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도 있다. 또 피해자로 신고했더니 상대방 학생도 신고해 가해 관련 학생이 된 사연도 있다. 대부분 상담 오는 시점은 학생이 확인서를 작성한 이후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경우에는 십중팔구다.
학생 확인서 작성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인지한 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작업이다. 학교에서는 당연한 행정이지만 학생들에게는 갑작스럽고 경직된 절차이다. 상담을 온 어머니나 학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섭고 놀라서 쓰라는 대로 썼는데 어떻게 썼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폭력 사안을 상담하거나 진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방어권이다. 특히 학교폭력 조사관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학생의 확인서는 조사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물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의 핵심 자료가 된다. 이처럼 학생 확인서는 무척 중요한 서류이고 이를 통해 소명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도 사전에 조율이나 안내 없이 급작스럽게 작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학폭위 개최 10일 전에야 신고 내용 알 수 있어
또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으로서는 어떤 일로 신고당했는지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조사관 조사까지 마쳐야 한다. 당사자들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10일 전에 참석 요청서를 받을 수 있는데 그제야 참석 요청서의 사안 개요에 적힌 사실관계를 보고 어떤 내용으로 신고를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형사 단계로 따지면 수사기관의 수사가 끝나고 공소장이 작성된 후에야 그 공소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이 사안 개요가 지니는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사안 개요를 기준으로 가해 학생 조치의 판단 요소(고의성·심각성· 지속성 등)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 사안 개요가 확정되기 전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자신의 입장이나 사실관계에 대해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없다면 그 방어권에 현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형사절차에서는 경찰 수사 단계부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고소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경찰서장의 고소장 비공개 결정은 피의자와 변호인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하였고(2000헌마474), 이후 경찰 수사 서류 열람 복사에 관한 규칙이 개정되어 정보공개 처리를 해오고 있다.
물론 학교폭력 심의 절차는 형사절차와는 구별된다. 형사절차는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확정하고 이에 적절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 진행되는 사법적 절차이지만, 학교폭력 심의는 행정적 절차이자 학교폭력 관련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적 절차다. 그러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처분이 교육적 조치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급학교 진학 등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등 처분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형사처벌과 비견될 수 있는 침익적(권리 침해적) 처분이라 할 수 있다.
확인서 작성 절차 및 피해 학생 확인서 열람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확인서를 작성할 때는 미리 언제 작성할지 학생과 조율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자 확인서 열람에 관한 절차를 만들어 필요한 부분으로 제한하여 열람을 허용하는 규정을 마련하면 어떨까. 이는 학교폭력 처리 절차 진행을 맡고 있는 교사들의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절박한 학부모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된다, 안 된다 크고 작은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다. 확인서 작성 및 열람과 관련하여 명확한 규정과 기준이 마련된다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학교폭력 예방 및 그 대책에 관한 법률 덕분에 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경계심이 생긴 것은 좋은 변화이고 이를 위해 교육부, 교육청과 학교가 큰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보인다. 기대가 큰 만큼 학교폭력 처리 절차가 공정의 완성형이 될 때까지 쓴소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홍민정 (변호사)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