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푼다는 그린벨트? "업자들만 배불리기" 우려 쏟아져
핵심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초고층·대형평수 아파트 지으라고 부추겨 집값 잡는다?
이례적인 '무제한 신축매입' 예고…애물단지만 비싸게 사서 껴안을라
"집값 안정보다 서울 부동산 상승 부르는 역설적 효과 부를 것" 우려
정부가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물량을 늘려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나섰다. 당장 석 달 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도 대폭 완화하겠다지만, 집값 안정에 기여도 하지 못한 채 규제만 과도하게 풀릴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강남 그린벨트 풀고 물량 공급한다지만…집값 안정 효과 미약할 듯
정부가 지난 8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이른바 '8·8 대책'에 따르면 수도권 신규택지 공급 물량을 올해 5만호, 내년 3만호 등 총 8만호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 및 인근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한다.
이처럼 서울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는 일은 이명박 정부 시절 2009~2012년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일대 등 5㎢를 해제한 이후 12년 만이다.
현재 서울 전체 면적의 25%에 해당하는 약 150㎢가 그린벨트로 묶여있지만, 강북 지역의 경우 대부분 산지·국립공원이어서 아파트 택지로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강남권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똘똘한 한 채' 현상이 강하기 때문에 그린벨트 해제 유력 후보지로 서울 강남과 강서, 송파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미 관련 개발 계획이 나왔던 강남구 수서차량기지, 강서구 김포공항 일대나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유력 후보였던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강남구 양재동 식유촌·송동마을 일대가 주목받는다. 이 외에도 경기도에서는 고양 대곡, 김포 고촌 등도 거론된다.
다만 서울 인구 집중 문제, 환경 문제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인 서울시와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합의했지만, 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와는 아직 협의하지 않았다.
이를 넘어 당장 3개월 뒤인 11월에 택지 대상을 발표하더라도 사업 계획 수립, 토지 보상부터 준공해 입주할 때까지 10여 년 이상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 주택 시장에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의 기대 심리만 자극할 수도 있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더라도 수도권의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택지 개발 가능성이 커지며 후보지 지정에 대한 기대감에 물망지 토지가격 상승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얼마나 물량 공급이 가능해서 시장안정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거나 끌어내려 서울 전역에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굳이 서울의 그린벨트까지 해제할 필요는 낮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초고급 아파트단지로 집값 떨어뜨린다고?
따라서 비록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눈에 확 띄지만, 실제 이번 방안의 핵심 대책으로는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한 점이 꼽힌다.
정비사업의 최대 용적률을 30%p씩 올려주고, 용적률을 완화한 데 따른 임대주택 공급 의무는 줄여준다. 재건축시 가구 수의 60% 이상, 재개발 사업에서는 80% 이상 전용면적 85㎡ 이하 소형 주택을 지어야 하는 의무는 폐지한다. 또 주상복합 재건축 사업에서 건축물 용도제한을 폐지하고 건축물 높이제한, 공원녹지 확보기준, 건물간 동간 간격 제한 등 각종 규제도 완화한다.
재건축 사업으로 발생한 초과이익 중 일부를 환수하기 위한 '재건축 부담금'은 폐지하고,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분담금 부담을 줄이도록 주택연금으로 분담금을 낼 수 있게 최대 한도 70%까지 개별인출을 허용한다. 아울러 비규제지역의 분양가 12억 원 이하의 경우 재건축 조합 및 1주택 원조합원에 대해 최대 40%까지 취득세를 감면하도록 열기로 했다.
이 외에도 재건축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요건 등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각종 절차도 완화하고, 필요시 전문가를 파견해 현장 갈등을 조율하는 등 사업 기간을 줄여 사업성을 높이고 물량 공급 시점도 앞당기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이처럼 조합 설립 등 정비 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비교적 분담금 부담이 높고 사업성이 떨어져 정비 사업이 어려웠던 강북권을 중심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다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 계획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대안 발표 다음날 "현재의 도시정비법으로도 가능한 문제를 재건축·재개발 특례법 제정으로 풀겠다는 건 이번 정부 대책이 보여주기식이라는 방증"이라며 "재건축·재개발로 초래될 수 있는 대상지 잠금 현상과 주택가격 급등, 외곽지역 키 맞추기 가격상승 현상에 대한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정비사업자들에 대해 선을 넘을 정도로 혜택을 몰아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용적률은 높이고 임대주택·소형주택 규제는 완화하면서 한 마디로 초고층·대형평수의 고급 아파트 단지를 마음껏 짓도록 정비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선물상자'를 안겼다는 지적이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그린벨트를 풀어준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가깝고, 도심 정비 사업에 말도 안되는 혜택을 쏟아낸 것이 이번 방안의 핵심"이라며 "집값 안정을 위한 공급 대책처럼 포장했지만, 정비사업의 사업성을 높여주는데 방점이 찍혔다"고 비판했다.
서울 非아파트 '무제한' 사들이겠다는 정부…"혈세로 부실덩어리들 사들이나"
이번 대책에서 또 다른 눈에 띄는 지점은 비(非)아파트 주택을 대상으로 한 신축매입임대 사업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11만호+α의 신축 주택을 구매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서울 지역에서는 "비아파트 공급상황이 정상화 될 때까지" 제한없이 매입하기로 했다. 위의 +α가 바로 이 뜻이다.
여기에 더해 각종 세제와 대출까지 지원해 사업성을 높여 착공 속도를 높이도록 도울 방침이다.
문제는 달성 목표부터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2만 6천 호를 매입임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공급 실적은 5천여 호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소 11만 호라는 목표를 세우고 매입에 나서는만큼, 과연 제값을 주고 주택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확고한 매입 의지를 밝힌 만큼, 관련 업자들로서는 '서울 안에 짓기만 하면 팔 수 있다'는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서울의 경우 빌라 등을 지을 부지가 한정된 마당에 땅값이 폭등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과도하게 비싼 가격에 주택을 짓거나, 입지가 좋지 않은 외곽에 주택을 세워 정부에 팔아치울 수도 있다.
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마구잡이로 지어 주택의 안전·품질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혈세로 주택을 사들이며 난개발을 부추기고, 정작 사들인 주택 물량은 시장에서 외면받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매입임대 실패 사례에 대해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세금이 아닌 내 돈이었다면 과연 지금 이 가격에 샀을지 의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김헌동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은 "세금 5억 써가며 빌라 사는 매입임대제도는 포퓰리즘의 망령"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 대해 '무제한'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매입임대에 불을 붙인 데 대해 우려가 쏟아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택수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보통 건설업자들이 다가구 양옥 주택을 사들여 빌라를 짓고 정부에 되파는 식인데, 위치 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이미 외관만 으리으리한데 수년째 입주도 안되고 방치되는 빌라들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수도권에 수조 원을 뿌려서 집을 사주겠다는 사업인데, 빌라만 사더라도 결국 아파트 값까지 자극을 받을 것"이라며 "혈세를 시장에 뿌리겠다고 공언한 것인데, 아주 심하게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대책"이라고 비난했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현 주택 시장 문제의 원인을 물량 부족으로 단정 짓고, 공급 일변도 대책을 세운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강원대학교 부동산학과 정준호 교수는 "시장의 공급이 중요하다지만, 애초 수요가 있어야 시장이 유지된다. 대출·금리를 건드리면 곧바로 가격이 빠질 수밖에 없는데, 관련 대책이 전혀 없다"며 "부동산 경기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관리하겠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공급 위주 대책만을 내놓은 데 대해 "거시 경제적으로 내수가 워낙 나쁘니, 건설업을 부양해 만회하려는 의도도 보인다"며 "결국 집값 안정화보다 서울 집값을 상승 유지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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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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