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체, 아래에서 더 아래를 향하는 목소리
"여기서부터는 조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고 실천이 뒤따름."(15) 이 책을 펼치는 이들은 가장 먼저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를 보게 된다. 저주체에 대한 깔끔한 개념 정리와 이론적 이해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다짜고짜 경고부터 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스스로 '즉흥 철학'을 실천하는 두 저자의 공동 창작물이기도 하다(8). 이 책은 '저주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크게 두 가지의 독특한 접근법을 취하는데 하나는 문체, 또 다른 하나는 소제목이다.
일단 표지에 티머시 모턴, 그리고 도미닉 보이어 라고 공저 표기가 되어있음에도 본문 어디에서도 대화체 혹은 일인칭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누구의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일인칭 단수형 문장들 속에서 저자들은 합창한다. "때로는 하나를 해체하기 위해 둘이 필요해. 우리가 사용하는 나 I는 환각적인 것, 즉 교대로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과 논쟁하기도 하는 우리 we야."(15) 그리고 때로는 속삭이기도 한다. "글쎄, 여기에서 순수한 나를 찾는 것은 어려울 거야."(26) 이렇게 '둘'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는 하나의 목소리는 우리의 사유가 늘 타인과의 대화에서 생성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의 끝나지 않는 대화에서 확장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이 책은 내 안의, 그리고 나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혼합물들의 존재를 강조하며 계속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다음의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 혹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작다...'
이 책이 저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또 하나의 실천적 전략은 여러 단어들로 나열된 소제목인데 이를테면 이 책 1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초객체들, 나르시시즘, 백인 소년들, 고리화, 십 대들, 장난감들, 게임들, 스쾃들, 장내 세균." 5장까지 계속 이런 식이다. 제목에 나열된 단어들은 각 장의 주제를 압축하거나 요약하지 않는 사유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매끄럽게 핵심을 정리하지 않고 배열과 조합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제목 구성은 이 책에서 저주체의 개념을 끝끝내 한 줄로 요약하지 않고 곳곳에 힌트를 던져놓으며 저주체를 향한 여러 노선을 제시하는 전개 방식과도 맞닿아있다. 제목에 기입된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개념들, 혹은 잠깐 언급되었을 뿐인 사례들은 제목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이 책에서 자신만의 작은 영역을 '스쾃'한다.
이렇듯 재치 있는 기획은 티머시 모턴과 도미닉 보이어의 대화 철학이 '놀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저자들은 전지구적인 것을 열망하는 산업과 근대성의 거인들이 지배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기보다, 오히려 여기서 저주체로서 각성하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잠재적인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장난스럽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움직임들로서 요청된다고 말한다. 저주체들은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자신의 책임과 자격과 윤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거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 만은 알고 있으며 그 점이 중요하다(81). 이 책은 저주체와 저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기보다 우리 자신이 이미 저주체이고 저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각성하게 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각성은 지금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끔 하며 우리를 냉소적 이성에 가두는 이데올로기의 전략에 대항할 방법을 독자 각각의 삶 속에서 만들어낼 것이다. 어쩌면 저자들이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주장이 아니다. 전체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묵시론적 사고 해체하기. 필자가 보기에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문단은 다음과 같다.
"이건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신자유주의와 대립할 수 있게 하지. 우린 할 수 있어, 다른 것을 해낼 수 있어. 왜냐하면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자신의 구성요소보다 작은 것임을 이해했기 때문이야. 물리적으로 그건 거대할 수 있어. 무장한 경찰들을 통해 지구 전체를 덮는 거지.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는 북극곰 한 마리보다 작아."(171)
'저주체'는 북극곰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지 감각할 수 있으며, 동시에 북극곰 한 명의 삶을 위해 거리로 나갈 수 있는 비체적 힘을 갖고 있다. 저주체는 하이퍼객체, 즉 초주체에 대한 대항작업이다. 하지만 초주체를 알지 못해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저주체의 개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초주체의 윤곽 또한 잡혀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그리고 확장된 클라우드로 인해 인간이 육체도 죽음도 초월할 수 있다는 믿음 대신, 저월의 감각을 키우는 것은 나 아닌 사물들을 향해 더 민감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저월은 "사물의 집합이 자신의 구성요소에 대해 하향적으로 인과작용을 하며 창발할 때"이며, 이를 통해 상호관계와 민감성이 커지는 저주체들은 다른 존재들과 '동맹'을 형성하도록 스스로를 북돋는다(172). 저자들이 저주체 라는 개념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이 '감산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체의 일부 특징을 제거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영역으로 스며들게끔" 하기에 "일반적으로 주체성과 연관시키지 않는 범주의 영역으로 저주체를 이출"할 수 있게 한다(140). 이것은 저주체 개념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저자들은 저주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사육하거나 합리화시키지 않고 어쩌면 야생적인 개념으로 두는 것이 이 책에서 사유해 온 전체 노선의 요점에 어울린다는 점을 덧붙인다(141).
끝으로, 이 책의 맨 앞(목차 다음 페이지)과 맨 뒤(참고문헌 다음 페이지)에 그려진 삽화들에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두 페이지에 공통으로 그려진 것은 다름 아닌 룸바(자동으로 바닥을 청소하는 가정용 로봇청소기)이다. 앞쪽 그림에는 고양이가 올라탄 룸바와 또 하나의 룸바가 부딪히고 있고, 뒤쪽의 그림에는 도마뱀으로 추측되는 파충류가 올라탄 룸바에 장난감 혹은 미끼가 달려 힘없이 이끌려가고 있다. 저자들은 저주체를 알아가려는 이 책의 사고 실험이 우리 자신을 저월시키기 위한 훈련이자 방황이었으며 "우리가 지금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며 저자들을 포함하여 독자들을 "철학적인 것의 룸바들"이라고 호명한다(168). 바닥과 땅 가까이에 머무르며 자신보다 작은 것들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이곳저곳 장애물과도 같은 책상다리와 벽에 부딪히면서 굴러가는 어떤 기계이자 사물의 모습 속에서 저주체의 상징을 목격하는 것이다. 저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양이와 도마뱀 같은 비인간 존재자들이 기꺼이 동료로 인식하는 피조물이자 그들의 장난감이 기꺼이 되어주는, 그리고 자주 고장나서 시스템을 이탈하고 프로그램에 재접속을 시도하는, 일탈하면서도 계속해서 작은 것들을 인식하고자 하는, 당신 주변에 이미 있는 어떤 것이다.
[전솔비 시각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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