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해외취업’ 들뜬 취준생들 베트남 갔다가 벌어진 일 [범죄열전]
도박사이트 운영… 영화 ‘범죄도시’ 현실판
공권력도 무용지물… 납치·감금 사례 빈번
20대 후반 A씨에게 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은 막막했다. 한 취업 광고는 그런 그에게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회사는 높은 수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베트남 현지에서 식사와 숙소도 제공한다고 했다. A씨는 동아줄을 잡았다.
그게 썩은 동아줄인 줄은 몰랐다. 베트남에 도착하고 보니 같은 처지의 청년 4명이 있었다.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회사에선 광고대로 항공권과 숙소, 매 끼니를 제공했다. 월급도 꼬박꼬박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하는 범죄였다.
A씨 등 5명은 2015년 8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년간 베트남 현지 사무실에서 게임머니를 충전하고 환전하는 일을 했다. 그들이 운영에 가담한 사이트 판돈의 총액은 978억원에 달했다. 계속 잘나갈 것 같았던 사이트는 한순간에 문을 닫았다. 2016년 8월 국내로 입국한 공범 1명이 구속되면서 사이트가 발각됐다.
경찰이 인터폴에 국제공조수사를 요청해 적색 수배가 걸리고 여권이 무효가 된 이들은 결국 2017년 5월4일 경찰에 자수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취업을 꿈꾸며 출국했던 청년들은 인천공항에서 구속됐다.
20∼30대 청년들이 해외 취업을 목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갔다가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보고 연락했다가 가담하게 되는 모습이다. 취업 미끼에 속아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갔다가 빠져나오기 위해 탈출극을 벌이는 일도 늘고 있다.
현지에서 피해자들이 감금을 당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 5월21일 대구경찰청은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한국인 19명이 구출됐다고 밝혔다. 이곳은 3국 정부의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내륙 오지로 마약 생산과 밀매, 납치와 감금 범죄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초대 링크를 보내며 비상장 가상자산에 투자하도록 사람들을 유인했다. 이들이 동원된 사기의 피해자는 총 308명으로 범행으로 편취한 수익은 246억원에 달한다. 한국 대사관 요청으로 현지 경찰에 의해 구출된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해외 취업 사기, 한 달 동안 38건…“감금되면 구출 쉽지 않아”
한국인이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신고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4건에 그쳤지만 2023년 94건에 육박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얀마에서 한국인 19명이, 12월에는 라오스에서 8명이 감금됐다 구출됐다. 모두 취업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에만 38건의 해외 취업 사기 신고가 접수됐다.
외교부는 취업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지난해 11월 미얀마 일부 지역과 지난 2월 라오스 골든 트라이앵글 경제특구 지역에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발령했다. 외교부는 “(골든 트라이앵글 외) 캄보디아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코로나 이후 한국인을 대상으로 불법 행위를 강요하는 취업 사기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취업 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동남아 취업 광고에 유의하고 위험지역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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