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핵선제 불사용 제안, 거부만이 능사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24. 8. 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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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25) 핵무기 통제 신경전 벌이는 미중

다방면에 걸쳐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핵무기 통제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근래 들어 미국의 국방부(펜타곤)는 중국이 핵무기 증강과 투발수단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현재 400∼500개 가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이 2030년까진 1000개로, 2035년까지 1500개로 늘릴 것이라는 게 골자다. 특히 펜타곤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35년경에는 중국이 미국 및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무가 숫자에 버금가는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정확한 핵무기 보유량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공론화에 몰두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공식적인 핵보유국인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가 핵보유국이든, 비핵국가이든 그 누구를 상대로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국제 조약이나 공동선언을 통해 약속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핵실험을 실시한 당일부터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공언하면서 다른 핵보유국들도 마찬가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올해 들어서 이러한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 스위스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이 제안을 내놓은 데 이어 7월말〜8월초에 제네바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준비회의에서도 초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중국의 핵무기 증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과 우려가 높아지자 중국이 '물타기' 차원에서 핵선제 불사용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 핵군비통제 협상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핵전력이 10분의 1 수준이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전략적 우려를 갖고 있는 중국은 핵군비통제 협상에 소극적이다.

핵문제를 둘러싼 미중간의 신경전이 격화되면서 우려스러운 상황도 고개를 들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핵군축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핵전력은 '현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신형 핵무기 및 운반수단은 개량하면서도 양적으로는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줄여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취임 첫해인 2009년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엔 1조 달러에 달하는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당시 부통령이었고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임기 초반에는 국가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핵무기 현대화는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핵무기 감축과 현대화'로 요약되는 미국의 핵전략 기류마저 바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핵무기 현대화는 물론이고 증강에도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중국이 비약적으로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다는 자체 판단이다. 중국을 향해 '핵군비통제 협상에 나서든지 핵군비경쟁을 선택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의 핵선제 불사용 제안을 거부하고 중국은 미국의 핵군축 협상을 거부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냉전 시대엔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극심한 핵군비경쟁을 벌였다면, 신냉전 시대에는 미러뿐만 아니라 미중 간의 핵군비경쟁도 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내 일각에선 최소 억제와 핵선제 불사용에 기초한 중국의 핵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의 전략적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는 만큼, 중국도 핵무기의 대폭적인 증강과 더불어 핵선제 불사용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아직 이를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가 흔들릴수록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을 공산은 커진다. 미국 내 일각에선 중국이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핵무기 및 MD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절멸의 무기'로 불리는 핵무기의 선제 불사용은 중국만의 정책이나 요구는 아니다. 기실 이 제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당사자들은 미국의 전략가들이었다. 대소 봉쇄 정책의 설계자로 불린 조지 케넌,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맥조지 번디, 국방장관 출신 로버트 맥나마라 등은 1982년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인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미국이 왜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주도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밝힌 바 있다.

이 정책이 의도적이거나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낮출 뿐만 아니라 "핵무기 감축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많은 나라들과 전략가들은 NPT를 개정하거나 별도의 조약을 통해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국제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이를 한사코 마다해왔다.

미국은 최초의 핵보유국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이다. 또 오늘날에도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강의 핵국가이다. 이러한 미국이 중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절멸의 무기'를 '금기의 무기'로 만드는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뜻을 모으면 어떠한 형태로든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국제규범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핵군축 협상에 중국의 동참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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