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이와 언니들’의 도전은 값젠 동메달로 막을 내렸다. 한국 여자 대표팀이 1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신유빈(20·대한항공)과 이은혜(29·대한항공), 전지희(32·미래에셋증권)은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매치 점수 3-0으로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탁구 단체전은 2008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신성됐다. 베이징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여자 탁구 대표팀은 2012 런던에서 4위에 그친 뒤 2016 리우와 2020 도쿄에선 4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번 동메달은 16년 만에 나온 값진 동메달이다.
여자 탁구 대표팀의 ‘에이스’ 신유빈은 혼합복식 동메달에 이어 단체전 동메달까지 더해 ‘멀티 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한국 탁구에서 올림픽 멀티 메달리스트는 1988 서울의 유남규(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복식 동메달), 1992 바르셀로나의 김택수(남자 단식, 남자 복식 동메달), 현정화(여자 단식, 여자 복식 동메달) 이후 신유빈이 사상 네 번째다. 앞선 세 명의 선수가 여전히 한국 탁구를 대표하고 있는 전설인 만큼 신유빈도 이번 파리 올림픽을 통해 그들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경기의 출발부터 치열했다. 여자 복식 세계랭킹 2위이자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복식 금메달을 따낸 ‘황금 콤비’ 신유빈-전지희 조가 독일의 완 위안-산 샤오나를 상대로 풀게임 접전 끝에 3-2(11-6 11-8 8 11 10-12 ) 승리를 거뒀다.
1,2게임을 따낸 뒤 3게임을 내줬으나 4게임 9-9에서 상대 범실로 매치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전지희의 회심의 포핸드 드라이브가 네트에 걸려 듀스에 돌입했다. 이후 연속 범실을 저질러 승부는 5게임으로 향했다.
5게임 초반도 독일의 페이스였다. 랠 리가 길어지면 어김없이 독일의 점수로 연결됐다. 그러나 신유빈-전지희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4-7에서 연속 4점을 따내며 8-7도 역전에 성공했다. 한 포인트, 한 포인트마다 신유빈과 전지희가 내는 기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만큼 절박했다.
8-8에서 신유빈이 상대 공격을 가까스로 백핸드로 받아냈고, 독일의 범실로 연결됐다. 이어 전지희의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가 제대로 들어가며 10-8 매치포인트에 먼저 도달했다. 신유빈의 예리한 서브에 독일의 리턴이 테이블을 벗어나면서 11-8 승리가 확정됐다. 신유빈과 전지희는 주저 앉아 포효했다. 그 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러퍼질 정도였다.
2단식 주자로 나선 이은혜의 상대는 독일의 ‘18세 신예’ 아네트 카우프만. 원래 독일 대표팀이 에이스인 41세 중국계 수비전형 선수인 한잉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빠지면서 리저브에서 주전으로 승격한 선수다. 그럼에도 카우프만은 미국과의 16강전, 인도와의 8강전에서 단식으로 2경기에 나서 2승을 책임졌고, 일본에 1-3으로 패한 4강전에서도 유일한 승리를 가져온 선수다. 카우프만은 일본이 자랑하는 16세 ‘천재’ 하리모토 미와를 3-0(11-9 11-8 11-8)으로 꺾어버렸다.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카우프만을 상대로 이은혜는 1게임부터 압도했고, 10-8 게임 포인트에 도달한 뒤 카우프만의 백핸드 범실로 1게임을 가져오며 기선을 제압했다. 2게임도 팽팽한 접전이 펼쳐졌고, 8-8에서 이은혜가 연속 2점을 따내며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다. 한 점을 내줬지만, 바나나 플릭으로 상대의 리턴 범실을 유도해내며 2게임도 11-9로 이겼다.
기세가 오른 이은혜는 3게임도 초반 4-1로 앞서나가며 승기를 잡았다. 이후에도 강력한 포핸드로 카우프만을 몰아붙이며 10-2까지 달아나 매치포인트에 도달했다. 이어 카우프만의 리턴이 테이블 밖으로 벗어나면서 3-0(11-8 11-9 11-2) 완승을 거뒀다.
3단식 주자는 전지희. 상대는 독일 내에서 가장 세계랭킹이 높은 산 샤오나(40위)였다. 단식 세계랭킹 15위에 올라있는 전지희는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이 걸린 경기에서는 빼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1게임부터 완벽하게 전지희가 샤오나를 압도했다. 백핸드와 포핸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샤오나를 밀어붙였다. 1게임을 11-6으로 잡은 전지희는 2게임도 11-6으로 가볍게 잡았다. 3게임에서도 전지희의 경기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상대 테이블 구석으로 들어가는 포핸드 드라이브가 일품이었다. 샤오나는 이를 받아내지 못하거나 받아내도 네트에 걸리기 일쑤였다. 전지희는 10-6으로 동메달 포인트에 도달했고, 바나나 플릭으로 상대 범실을 유도하며 16년 만의 단체전 동메달을 확정지었다. 전지희, 이은혜의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이자 신유빈의 ‘멀티 메달리스트’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