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女탁구, 16년 만에 단체전 銅…신유빈은 두 번째 동메달
한국 여자 탁구가 1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따냈다.
신유빈(20)과 전지희(32), 이은혜(29)로 구성된 여자 탁구 대표팀은 10일(현지 시각)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에 매치 점수 3대0으로 이겼다.
김경아와 당예서, 박미영이 함께한 2008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이후 한국 여자 탁구가 단체전에서 16년 만에 획득한 귀중한 메달이다. 남녀 통틀어선 2012년 런던 남자 단체전(은) 이후 12년 만이다.
파리 올림픽 단체전은 5전 3선승제이며, 먼저 복식을 한 번 치른 뒤 단식 경기가 이어진다. 한국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조인 신유빈-전지희 조를 1복식 선봉에 내세웠다. 중국계 듀오인 샨 샤오나-완위안 조를 맞아 1게임을 11-6, 2게임을 11-8로 잡아냈지만, 3~4게임을 잇달아 내줬다.
신-전 조는 5게임에서 8-8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독일 선수들의 거센 공격을 다 받아내며 범실을 유도, 9-8로 앞섰다. 결국 11-9로 승리하며 1복식을 잡았다.
오광헌 여자 대표팀 감독은 2단식에 첫 올림픽 무대에 선 이은혜를 내세웠다. 상대는 독일의 18세 신예 아네트 카우프만. 원래 이번 대회에 후보 선수로 참가할 예정이었던 카우프만은 41세 중국계 에이스 한잉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빠지면서 주전으로 올라섰고, 16강전과 8강전에서 연거푸 2승을 책임지며 독일의 4강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은혜는 카우프만을 상대로 특유의 파워를 앞세워 1~3게임을 모두 잡아내며 손쉽게 2단식까지 가져갔다. 국내 선발전을 거쳐 막차로 대표로 뽑힌 이은혜는 이번 대회에서 고비마다 맹활약하며 동메달 획득의 일등 공신이 됐다. 당초 대표팀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은혜가 보여준 반전이었다.
한국 국가대표 생활 13년 만에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 전지희가 3단식에 출격해 중국계 41세 베테랑 샨 샤오나를 상대했다. 1게임을 11-6으로 잡아낸 전지희는 2게임에서도 상대를 몰아붙이며 11-6 승리를 거뒀다. 전지희는 3게임 10-6으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 공이 아웃되면서 감격의 승리를 확정했다.
‘삐약이’ 신유빈은 두 번째 올림픽 무대인 파리에서 한국 탁구를 지탱한 버팀목이 됐다.
그는 이번 대회에 혼합 복식과 여자 단식, 단체전에 나서며 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뛰었다. 지난달 27일 임종훈과 짝을 이룬 혼합 복식 16강전을 시작으로 이날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까지 14경기에 나섰다. 보름 동안 경기를 치른 날만 12일이다.
신유빈은 “매 경기 포인트 하나 하나에 집중하다보니 지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렇게 많은 경기를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경기를 치르며 시간이 날 때마다 바나나와 주먹밥, 에너지 젤 등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신유빈은 앞선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걸며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 은메달에 이어 12년 만에 한국 탁구에 메달을 안겼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금메달에 이어 올림픽 무대에서도 동메달을 따며 ‘복식 천재’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식은 파트너 동선을 예측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뛰어난 탁구 지능과 순발력을 요구하는데 신유빈은 안정적인 커트와 드라이브 등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완성된 복식 선수의 면모를 자랑했다.
신유빈의 활약은 복식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자 단식에서도 2004 아테네 대회 유승민(금), 김경아(동) 이후 20년 만에 4강에 올랐다. 비록 메달을 따내진 못했지만, 파워와 스피드가 눈에 띄게 향상됐고 안정적 서브와 리시브를 선보이는 등 모든 면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재작년 오른손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신유빈은 긴 재활 기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돌아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선 동메달 2개로 값진 성과를 남겼다.
한국 동메달의 또 다른 주역 전지희(32)는 중국 허베이성 출신이다.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지냈지만, 탁구 대국 중국 성인 대표 벽이 너무 높아 탁구를 그만 둘까 고민하다 2008년 한국행을 택했다. 2011년 한국 국적을 얻으면서 ‘톈민웨이’에서 전지희가 됐다.
“한국 선수로 뛰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다”고 했던 전지희는 지난해 신유빈과 짝을 이룬 여자 복식에서 찬란히 빛났다. 5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했고, 항저우에선 한국 탁구에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2016 리우와 2020 도쿄 올림픽에 나섰지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던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건 쓸모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거침 없이 앞으로 나간 전지희는 파리에서 꿈에 그리던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전지희는 맏언니답게 “유빈이가 정말 고맙다”며 “유빈이가 국제대회에서 랭킹을 끌어올린 덕분에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 좋은 시드(3번)을 얻어 4강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올림픽 메달을 따면 더 좋은 환경에서 탁구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유빈이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희, 신유빈과 함께 단체전에 나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이은혜(29)도 중국 허베이성에서 태어났다. 내몽골 지역에서 탁구 선수로 뛰다가 당시 선교사 활동을 하던 양영자 감독(1988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을 만나 2011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지난 6월 치열한 국내 선발전을 거쳐 막차로 승선했다. 스웨덴과 8강전 2단식에서 에이스 린다 베리스트룀을 잡아내며 한국의 4강행에 큰 힘을 보탰다. 8강전 승리를 확정하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한 그는 “정말 승리가 간절할 때 나오는 행동”이라고 했다. 이날 독일전에서도 2단식에서 상대 에이스를 잡아내며 한국 탁구에 값진 동메달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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