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다 잃었는데 ‘백화점 옷’ 준들…김정은 ‘애민정신’에 감춰진 것들

김경진 2024. 8. 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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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북한에 큰비가 내려 신의주, 의주 등 일부 지역이 수해를 입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9일 이틀간 수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김 위원장은 평안북도 의주군의 수해 피해 이재민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중대연설'을 통해 어린이 등 취약 이재민 15,400명을 평양으로 보내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직접 구호물품과 생필품을 전용열차에 싣고 와 나눠주며 '애민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은 김 위원장을 보며 환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천막을 돌며 이재민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있다 (출처 : 북한 조선중앙통신)


■ 김정은, '인민대중제일주의' 내세우며 수해 현장 시찰

김 위원장은 수해 현장 곳곳을 돌며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친어버이 같은 '애민정신'을 내세웠습니다. 이재민들이 머무는 천막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손을 잡고 위로의 이야기를 건네는가 하면, 어린아이들에게 직접 사온 백화점 옷을 입혀주거나 과자를 먹여주고 볼에 뽀뽀를 해줬습니다.

노인들에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또 수해 구호물품과 식량 등을 자신의 전용 열차에 싣고 온 뒤 당 간부들에게 직접 나눠주도록 했습니다.

연설을 할 땐, 이재민들을 모두 버스에 태워 자신의 전용 열차가 있는 역으로 데리고 왔는데, 연설을 마친 뒤엔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북한은 이런 내용이 담긴 20여 분 짜리 영상을 오늘 하루 종일 방영하고 있습니다. 영상 속에는 선물을 받고 감격하는 어린이와 김정은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리는 주민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취약계층 이재민 15,400명을 평양으로 데려가겠다는 중대 발표가 담긴 연설은 반복적으로 선전 매체를 통해 노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재민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출처 : 북한 조선중앙통신)


■ 15~20명 있는 천막에 선풍기 한 대…다 잃었는데 '백화점 옷' 준들

선전 매체를 보면, 김 위원장이 방문한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이재민 캠프엔 가설 천막이 70여 개 있었습니다.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연신 땀을 흘리고 있고, 조선중앙통신도 '찌는듯한 무더위'라고 표현한 거로 보면 당시 의주의 날씨가 무척 더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설 천막엔 15명에서 20명의 사람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천막 안에 보이는 건 선전방송이 나올 텔레비전 한 대와 거울 1개, 옷걸이 1개, 선풍기 1대, 이불 등이었습니다. 천막 안의 선풍기 한 대는 그마저도 김 위원장을 향해 바람을 보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직접 평양 대성백화점에서 구입해 왔다는 레이스 원피스를 여자 아이들에게 입혀줬습니다. 옷을 입은 아이와 부모는 감격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전용열차에 싣고 온 쌀과 과자, 옷들 (출처 : 북한 조선중앙통신)


■ '고질적 폐해' 방치해 놓고…'자연재해' 탓하며 책임 피해

"김 위원장은, 조금만 참자고, 우리 이제 자연이 휩쓸고 간 페허 위에 보란 듯이 지상 낙원을 우뚝 세워놓고 잘살아보자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북한 매체는 이번 수해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였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당과 정부, 김 위원장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의주와 신의주 지역이 폭우만 내리면 저수지로 변해버리는 '고질적 취약성'이 있다며, 이를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압록강 변의 의주와 신의주 지역의 홍수 피해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1995년엔 압록강이 크게 범람해 압록강 맞은편 중국에까지 큰 피해를 입혔고, 이때 중국은 압록강 변에 수문과 방벽을 설치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2010년과 2012년, 2016년에도 홍수 피해는 이어졌는데 방벽을 세운 중국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늘 수해에 고스란히 노출됐습니다.

수해가 이렇게 자주 발생했다면 중국처럼 수해방지문이나 방벽 설치, 배수로 정비 등을 미리 진행할 수 있었지만 북한은 30년 넘게 이곳을 방치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방기해놓고 '자연 재해'만 탓할 순 없는 일인데도, 북한의 보도엔 이런 내용이 아예 빠져있습니다.

노동당 간부들이 대성백화점이라고 적힌 쇼핑백과 쌀, 과자를 이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출처 : 북한 조선중앙통신)


■ 남한의 수해 보도 일일이 반박하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

김 위원장은 '중대 연설'에 남한 얘기도 포함했습니다. 남측 언론이 수해 피해 보도를 날조해서 보도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며, "우리를 폄훼하는 궤변들을 한번 엮어 자기 국민을 얼리고 세상 여론을 흔들어보자는 심산"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한 보도와 달리 지난달 28일 자신이 방문한 수해 현장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거듭 밝혔고, 지난달 27일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데도 평양에서 전승절 행사를 진행했다는 남한 보도는 억지 낭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며 "적이 어떤 적인가를 직접 알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대적관을 바로 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의주 지역 수해 이재민들을 모아놓고 중대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북한 조선중앙통신)


■ 외부 지원은 '거부'…체면 차리고 '재난 극복' 지도자상 정립 의도

김 위원장은 심각한 수해에도 외부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의지도 천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우리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의향을 전해오고 있다"며 사의를 표한 뒤 "자체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수해 지원을 수용할 경우 체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양 교수는 "동시에 핵 강국이 재난 피해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체면적 비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기 독자 극복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상을 재정립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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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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