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 위기에 매트에 뛰어든 코치, 오혜리의 새 시대 리더십[파리는 지금]
지난 8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선 흐뭇한 그림이 연출됐다. 여자 49㎏급 2연패(連霸)를 달성한 태국의 파니팍 웡파타나낏이 팔각 매트에 무릎을 꿇더니 자신의 스승인 최영석 감독에게 큰 절을 올렸다. 감독도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절을 했는데, 함께 만들어낸 금메달이라는 의미가 돋보였다.
하루 뒤인 9일 메달은 없었지만 또 다른 선수와 지도자의 2인 3각이 부각됐다. 남자 80㎏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서건우(21·한국체대)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벤치에 있던 오혜리 대표팀 코치(36)가 힘을 발휘했다. 오 코치의 행동 하나 하나에 서건우의 낯빛이 달라졌다.
오 코치는 서건우가 탈락 위기에 몰렸던 호아킨 추르칠(칠레)과 16강전에서 처음 주목받았다.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손에 진땀을 쥐는 접전을 벌였던 그 경기다.
1라운드를 내준 서건우는 2라운드 종료 34초를 남기고 6-15까지 밀렸다. 서건우는 가점(2점)이 붙는 회전차기로 매서운 추격전을 벌였다. 종료 직전 뒤차기가 몸통을 때린 뒤 상대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 감점이 주어진 상태로 경기가 종료됐다. 전광판 스코어는 14-16 패배였다.
오 코치의 시간이 시작됐다. 서건우의 마지막 발차기가 회전이 가미된 뒤차기로 정정돼 16-16 동점이 됐던 터. 심판이 추르힐의 승리를 선언하자 매트에 뛰어 들어 동점일 때 회전차기의 횟수가 많은 선수의 승리가 우선되는 규정을 심판에게 지적했다.
심판은 처음 추르칠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오 코치의 지적으로 뒤집혔다. 탈락 위기에서 벗어난 서건우는 3라운드에서 14-1로 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오 코치는 남은 경기에서도 16강전처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고비마다 맥을 짚는 주문으로 서건우를 도왔다.
오 코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급 금메달리스트로 2022년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지도자가 됐다. 현역 시절 태극마크를 달고도 올림픽 출전까지 10년이 걸렸던 오 코치는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을 잘 아는 지도자로 불린다.
이 부분이 선수가 우선인 새 시대에 어울리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됐다. 일방적인 리더십이 아닌 공감의 리더십, 동시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외 상황을 민감하게 잡아낼 수 있는 행동력이 모두 요구된다.
세계태권도연맹(WT)의 한 관계자는 “오 코치가 매트에 뛰어 들면서 모두가 놀랐다”면서 “경고 레터가 발송됐지만 지도자로 과감한 결정은 인정 받았다”고 전했다.
파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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